메모노트 66

매일 한 편의 시라도...

매일 한 편의 시라도 읽기로 결심했다. 시집을 읽다보면 하루에도 열 편도 넘게 읽을 수 있지만, 매일 시집을 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도 그 유명한 시인의 시집 한 권 사지 않고 문제집 속에 선별된 시들만 읽어대는, 그리고 그걸 쪼개고 나누고 흩어놓는 식으로 가르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해본다. 그래서 매일 시 한 편은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두 권을 사서 읽고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시집 을 읽으며 단상이라고 적을 요량으로 이 글을 쓴다. 이슬의 꿈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 이슬은 사라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이슬은 햇살과 한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 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한..

메모노트 2014.04.03

그 샘(함민복)

그 샘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3학년 올기에게 빌려주었던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을 몇 달이 지나서야 돌려받았다. 그간 이 시집을 내가 샀던가 싶게 잊고 있었던 터라, 마치 선..

메모노트 2014.03.17

'책을 읽다' 마지막 시간 140218

'책을 읽다' 마지막 시간. 오늘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마지막으로 '책을 읽다' 모임을 넛지살롱에서 가졌다. 번역도 어렵고 내용도 쉽지 않은데, 열심히들 읽어 온 모두 수고 많았다. 늘 그렇지만, 아이들과의 모임 덕분에 나 역시 책을 열심히, 평소보다 많이, 그리고 꾸준히 읽었던 것 같아 고맙다. 책을 읽는 일은 분명 인생을 살찌우고 생각의 힘을 기르는 일이다. 그래서 삶이 어떻고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그러하기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1년동안 참 많이도 읽었다. 1학기 -나이젤 워버턴, '철학의 주요문제에 대한 논쟁'(최희복 역, 간디서원, 1997)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박홍규 역, 문예출판사, 2009) (여름방학) -프란츠 카프카, '변신' 2학기..

메모노트 2014.02.18

늙어가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신경림의 『사진관집 이층』을 읽고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을 읽다. 사진관집이층신경림시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시 지은이 신경림 (창비, 2014년) 상세보기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제집에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 ‘갈대’, ‘농무’만을 읽어댔던 내가 서점에서 우연하면서도 반갑게 집어든 시집이 (2014)이었다. 신경림 시인이 1935년생이니, 올해로 80세를 맞으신 거다. 그간 신경림 선생은 숱한 시들을 썼을 거고, 시를 가르치는 나에겐 그중에서 잘 알고 가르친 시라곤 앞의 세 편이 전부였다. 신경림 시인의 시집 한 권조차 없었던 걸 생각하면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시집을 산 날, 아이들과 아내가 곤히 잠들어있던 이른 새벽 이 시집을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정성껏 읽었다. 마지막 시를 읽고 ..

메모노트 2014.02.04

'우정에 관하여'(키케로, 천병희 역, 숲, 2005)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저자키케로 지음출판사숲 | 2005-06-30 출간카테고리인문책소개고령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만 -노인-은 있어도 -원로-는... 내가 생각하는 학교, 수업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우정'이다. 사실 친구 사이의 우정이란 머리 속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또는 교사가 가르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삶 속에서 이미 느끼고 배우고 있는 가치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정'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울타리는 견고해지고 누군가는 소외되기도 하기에, '우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은 중요하다. 우정에 관한 글로 우선 두 가지를 찾아 읽는다. 먼저 이반 일리치의 '우정에 대하여'란 글. 일반적인 우정에 관한 글이라기보다는 그의 말처럼 '테크놀로지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인간관계를..

메모노트 2014.01.21

2학기 인문고전 독서반 마지막 모임

1학기에 이어 인문고전 독서반 2학기 마지막 모임. 마지막에 읽은 책은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2002). 이 책은 몇 년전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아침시간에 짬짬이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책이다. 그때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모두 녹음이 되어 팟캐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모임에서는 종로의 세미나실을 빌려 3시간 가까이 토론까지 벌였고, 그때 아이들과도 꼭 한번 읽고 싶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일이 이루어졌다. 인문고전 독서반 2학기 모임을 마치는 자리라 학교를 벗어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을 찾다가 정동길에 새로 자리를 잡은 '넛지살롱'을 찾았다. 페북을 통해 알게 된 곳으로, 까페라기보다는 책과 사람과 커피가 함께 있는 인문공간이라고..

메모노트 2013.11.29

10월~11월 독서, 2013

인디고 연구소, 지젝은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진주의적 철학자로, 그의 책은 난해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고 평이 나 있다. 그러한 평가 자체가 그의 책을 사서 읽기 어렵게 만들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터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 자체에 대한 각론 수준의 내용이라 생각보다 읽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어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책이다. 왠지 다가갈 수 없는 사람에게 다가간 느낌. 책의 내용은 공동선에 대한 추구와 희망에 대한 그의 생각을 어렵지 않은 표현들을 통해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생각의 틀이 조금씩 비틀려 열리는 느낌을 주어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이다. 아이들하고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지젝, 오래 전에 사 두었지만 책꽂이에서 책 제목만 수십 번 바라봤던 책..

메모노트 2013.11.26

'자유'란 주제로 함께 읽기

인문고전반에서 읽은 책 중에서, 존 스튜어트 밀 라 보에티 조지 오웰 , 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한 모든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책으로, 고전으로 불리는 것에 비하면 내용이 반복되는 면이 있고 그 주제만 잘 파악하면 고등학생이 읽는 데에 큰 무리가 없다. '자유'란 가치에 대해 원론적인 측면에서 생각을 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은 18세의 나이로 라 보에티가 절대군주의 폭정이 가능한 이유를 민중들의 노예근성 또는 자발적 복종을 언급한 점에서 '자유'의 억압이 외부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자유'의 가치를 망각하게 된 민중들 내부에 그 이유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군주의 술책이 어떻게 민중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지에 대해서도 언급되고 ..

메모노트 2013.11.26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13

, 다니엘 페나크,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13 더러 우리 멋대로 말을 만들고, 고유 명사를 뒤바꾸고, 줄거리를 뒤섞고, 이 이야기의 서두에 저 이야기의 결말을 갖다 붙였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아니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본 적도 한 번 없이 그저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했을지라도, 우리는 아이에게만은 소설가였고 유일한 이야기꾼이었다. 20 한마디로 아이는 진정한 독자였다. 20 무상의 베풂. 아이는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로 말이다. 일상의 시간을 벗어나는 한순간. 모든 것을 접어둔 채…… 밤마다 듣는 이야기는 아이에게서 하루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닻줄이 하나하나 풀리면, 아이는 바람을 따라 항해를 했다. 한없이 가벼운…… 그 바람은 바로 우리들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41 그..

메모노트 2013.11.04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자음과모음, 2013

요즘은 책을 읽으며, 발췌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일단 발췌해놓고 글을 쓸 준비를 한다. 그게 번거롭더라도 나중에 관련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당장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중에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발췌록/ ,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자음과모음, 2013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부하에게, 또는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진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부하로서 희희낙락하며 영락해가는 것입니다. 멋지네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23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메모노트 201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