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수다 8

하루를 같이 살아가기

​ 1. 수요일 아침인데도 교무실이 조용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수요일 1교시가 공강인 경우가 많아 수요일 아침이면 늘 교무실 수돗가가 북적였는데 말이다. 혼자 조용히 커피를 내리다 어느 한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무슨 문제나 고민 때문인지 얼굴이 어둡다. 이유는 묻지 않고 있다. 때로는 그게 배려가 될 수 있기에.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말없이 건넸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울컥하며 눈물을 흘렸다. 2. 사람들은 큰 일을 겪고 있을 때 어제와 같은 일상을 지속하기 어렵다. 너무나 절박하고 슬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절박함과 슬픔 부족'과 같은 자책감 또는 죄책감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모질기만 한 사람들은 그런 줄도 모른 채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도 밥이..

단상노트 2015.06.10

교사로서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1. 아이들과 독서모임을 하던 중, '교육 불가능성'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다. '교육 불가능성'은 이계삼 선생이 한 말인데,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바로 한 아이의 반론이 제기되었다. "선생님, 희망은 있어요. 그건 선생님이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아차, 내 말이 오해를 낳았다. 먼저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설명하지 않은 게 잘못이다. 희망이 없다거나 무기력함과 체념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아마 이 말이 생각이 났더라면 더 좋았을걸.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엄기호, 중)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읽은 책에서 언급된 것이라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또한 내가 그 취지는 이해하..

단상노트 2015.06.01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요?"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요?” “제시문에는 그런 말이 없잖아.”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생각을 이어나가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문제를 풀 수 없잖아.” 내 말을 듣고도 그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문제의 정답을 알아내려면 제시문 안에서 해결해야 돼.”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어쨌든 그건 니 생각이고, 제시문에는 언급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자기 생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제시문 안에서만, 제시문을 근거로 해서만 문제를 풀어야 해.” 제시문도 주어져 있고 정답도 있는 문제다. 그러니 문제의 정답을 맞히려면 네 생각은 넓혀서도 안 되고 네 생각이 아니라 제시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생각 울타리 안에서만 놀아..

단상노트 2014.09.25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사는가

3학년 담임을 3년 동안 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들의 추천서를 썼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들의 자소서를 보게 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고교 3년 동안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열중했다. '스토리'(이야기)는 주제, 구성, 문체 3요소로 이루어졌지. 할 말이 있으니 주제가 있는 거고, 나름 하나의 흐름을 이뤄 짜임새 있게 흘러가니 구성이 있어야 하며, 쓰는 사람이 누군지를 글을 통해 알 수 있어야 하니 스타일(문체)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매 순간이 이야기나 소설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억을 더듬다 보면 기억나는 것들은, 기억날 만큼의 인상을 남긴 어느 순간의 장면이거나 밥 먹을 때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이기 마련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망각'이다 보니 사람..

단상노트 2014.07.06

과자 봉지 뜯어줄까?

저녁시간 아이들이 교정에서 왁자지껄 놀고 있는 걸 보러 중앙계단으로 나오니 대학에 다니고 있는 졸업생 하나가 서 있었다. 대화는 거기서 시작됐다. 대학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은 걸 해보고 있는데, 딱히 자기가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나 공부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고, 그래서 어떤 일에 푹 빠져 공부하고 경험하며 지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나도 그때쯤 했었던 고민인데, 딱히 만족할 만한 답을 해주진 못했다. 그냥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늘 하는 말로, 아직 그걸 확실히 정할 수 있을 만한 나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잔뜩 펼쳐보고 고민하는 나이라고만 ..

단상노트 2014.04.16

모두가 반장이고 부반장이 되면?

반장과 부반장의 차이 해마다 반장 선거는 참 어렵다. 선거 방식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나름 경쟁이 치열할 때도 있으며, 희비가 엇갈릴 때에는 축하만큼이나 안타까움이 클 때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반장을 하려고 나오지 부반장을 하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인가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면, "제가 반장이 된다면~"이라고 하지 "제가 부반장이 된다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는 선거 방식과도 관련이 있겠지. 선거도 '최다 득표자가 반장, 그 다음 순위 득표자가 부반장' 식으로 순서대로 학급 임원 자리를 맡기니깐. 그런데 정말 '나는 부반장이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을까? 반장이라고 하면 앞에 나와서 말도 잘해야 하고 아이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고..

단상노트 2014.03.20

첫 만남과 무리수 140303

무리-수無理數 명사 1 . 실수이면서 분수의 형식으로 나타낼 수 없는 수. 예를 들어, , log2, π [같은 말] 3.14159… 따위가 있다. 2 .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를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시각이 대략 12시 가까이 되었으니, 첫 담임을 만나는 설렘만큼이나 점심을 먹고 싶은 식욕도 들고 일어날 시간이었을 거다. 더구나 담임이 처음 들어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우선 전달사항이 있다.'면서 학생카드를 잔뜩 나눠주고 사진은 몇 장 어디에 붙여오고 여분으로 몇 개를 가져오라는 등 신신당부를 했으니... 여기서부터 내가 무리수를 두려고 작정을 한 거다. 한참을 그런 이야기만 하다가 이제 내가 준비해온 걸 부끄럽게 꺼내들었는데, 그게 ..

단상노트 2014.03.08

너는 어떤 꿈을 꾸니?

'너'를 지지해.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시지 않으셨더라면... 1학년 때 전학을 갔던 아이다. 이과로 진로를 바꾸고 싶어 전학을 고민하면서 몇 번 상담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아이의 부모님은 힘들게 외고에 들어왔는데 일반고 이과로 전학을 가겠다는 딸을 걱정하시며 선뜻 그 생각에 동의를 표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인이와의 상담에서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이공계가 적성에 맞고 그쪽과 관련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가 분명해보였다.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에 따른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그래서 본인의 의사가 분명하고 그에 대해 확신이 있다면 부모님을 설득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한 것 같다. 그래서 다인이는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다. ..

단상노트 20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