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27

책상 정리

(탁진현, 홍익출판사, 2017) 가장 단순한 것의 힘 10년간의 기자생활을 뒤로하고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난 저자가 단순하게 일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물건으로 가득한 방, 잡일에 치이는 사무실, 걱정으로 시끄러운 마음은 모두 일 www.aladin.co.kr '빈 책상이 부른 기적' 일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없는 책상을 마주하면 매일이 새로 시작되는 날처럼 느껴진다. 하루 새 해이해진 의지를 아침에 다잡고 일을 착수할 수 있다. 나의 머릿속과 책상은 매일 포맷된 상태다. (80쪽)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을 마주하면 뭐라도 시작할 기분이 든다. 그게 매일 하는 일이라도 산뜻한 기분을 주는 건 사실이다. 아예 비어있다시피한 책상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최소한..

단상노트 2023.05.11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하루

흉추 압박골절로 집에서 쉬고 있다. 앉거나 서 있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니 주로 누워 있어야 한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이 늘어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쉬는 것도 해본 사람이 잘 하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도 뭘 할지를 고민하고 계획하고 있는 나도 참 웃프다. 일단 메모하고 기록하고 글쓰는 일을 일상으로 삼기로 했다. 잘 쓸 자신도 없고 특별한 소재도 없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내 삶에 좀 집중하거나 심플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서. 오늘은 책상도 정리했다. 되도록 비우기로 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채우고 쌓는 일에 익숙한 삶이어서 그런가 비우고 덜어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이것도 노력해야 하는 일이구나 싶다. 책상을 정리하면서 방안에 쌓인 책들을 하..

단상노트 2023.05.10

피젯 큐브를 사도 되겠다.

소위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피젯 큐브가 있다. '피젯 fidget'은 '꼼지락거리다'라는 뜻. 이걸 만지작거리거나 돌리는 행위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손이 심심해서 하는 것뿐이다. 볼펜을 손으로 돌리는 것 같은 행위라고나 할까.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굳이 돈 주고 사서, 아무 의미도 없이 만지작거리고 돌리고 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볼펜이나 돌리지.' 그냥 심심하니깐. 그냥 재미로. 그냥 하는 거지. 그냥....그냥... 그냥..... 그러다가 그 이유를 찾았다. 이 책을 우연히 읽다가...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홋타 슈고/서사원/2021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현명한 사람일수록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하버드, 옥스퍼드, 워싱턴대 등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증명한 생각의 스위치를..

단상노트 2021.09.24

지더라도 빛나는 메달을 줍니다

1. 9명의 아이들, 축구대회에 나가다. 11명의 멤버를 채우지 못해 결국 9명의 아이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뭐 전국대회도, 선수권대회도 아닌 클럽대회 정도인데 아이들도, 부모들도 열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모두 딱히 긴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긴장이라기보다는 설레는 표정들이었다. 초등 2학년들의 시합. 축구선수도 아니고 친구들끼리 축구클럽에서 볼을 찬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코치 선생님도 있고, 축구의 기본기도 배웠으며 포지션 배정도 받았다. 전략도 나름 있다. 코치가 그라운드를 달리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소리치며 요구하는, 그거.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전략이고 뭐고 없다. 볼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우르르 몰려온다. 나름 자기 포지션을 지키는 아이도 있어서 뛰어가다가도 자기 영역을 넘어..

단상노트 2016.10.18

호모 페이션스로 살아가기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로 살아가기 아이들 상담을 하다보면 고민의 구체적인 내용이야 다들 다르지만, 이것만큼은 같다. '고민을 한다'라는 사실과 '답이 없다'는 답답함. 시험은 당장 다음 주에 있는데 잘 볼 것 같지 않은 불안감. 열심히는 하는데 소기의 성과는 안 나오는 허탈감. 도대체 내 공부 방법에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답답함. 만약 앞으로 잘 하지 못하면 내가 목표로 한 대학은 물 건너갈 거라는 두려움. 그러면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진로나 이루고 싶은 꿈을 정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불안감. 그런데도 열심히만 공부하는 게 맞는지 확신은 못하겠고, 해야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고민을 하더라도 불안감과 답답함은 커져만 간다. 기운이 나질 않..

단상노트 2016.10.07

하루를 같이 살아가기

​ 1. 수요일 아침인데도 교무실이 조용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수요일 1교시가 공강인 경우가 많아 수요일 아침이면 늘 교무실 수돗가가 북적였는데 말이다. 혼자 조용히 커피를 내리다 어느 한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무슨 문제나 고민 때문인지 얼굴이 어둡다. 이유는 묻지 않고 있다. 때로는 그게 배려가 될 수 있기에.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말없이 건넸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울컥하며 눈물을 흘렸다. 2. 사람들은 큰 일을 겪고 있을 때 어제와 같은 일상을 지속하기 어렵다. 너무나 절박하고 슬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절박함과 슬픔 부족'과 같은 자책감 또는 죄책감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모질기만 한 사람들은 그런 줄도 모른 채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도 밥이..

단상노트 2015.06.10

교사로서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1. 아이들과 독서모임을 하던 중, '교육 불가능성'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다. '교육 불가능성'은 이계삼 선생이 한 말인데,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바로 한 아이의 반론이 제기되었다. "선생님, 희망은 있어요. 그건 선생님이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아차, 내 말이 오해를 낳았다. 먼저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설명하지 않은 게 잘못이다. 희망이 없다거나 무기력함과 체념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아마 이 말이 생각이 났더라면 더 좋았을걸. "희망은 그 폐허에 대한 응시에서 나온다."(엄기호, 중)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읽은 책에서 언급된 것이라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또한 내가 그 취지는 이해하..

단상노트 2015.06.01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요?"

한 아이가 질문을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요?” “제시문에는 그런 말이 없잖아.”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생각을 이어나가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문제를 풀 수 없잖아.” 내 말을 듣고도 그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문제의 정답을 알아내려면 제시문 안에서 해결해야 돼.”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어쨌든 그건 니 생각이고, 제시문에는 언급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자기 생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제시문 안에서만, 제시문을 근거로 해서만 문제를 풀어야 해.” 제시문도 주어져 있고 정답도 있는 문제다. 그러니 문제의 정답을 맞히려면 네 생각은 넓혀서도 안 되고 네 생각이 아니라 제시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생각 울타리 안에서만 놀아..

단상노트 2014.09.25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사는가

3학년 담임을 3년 동안 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들의 추천서를 썼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들의 자소서를 보게 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고교 3년 동안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열중했다. '스토리'(이야기)는 주제, 구성, 문체 3요소로 이루어졌지. 할 말이 있으니 주제가 있는 거고, 나름 하나의 흐름을 이뤄 짜임새 있게 흘러가니 구성이 있어야 하며, 쓰는 사람이 누군지를 글을 통해 알 수 있어야 하니 스타일(문체)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매 순간이 이야기나 소설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억을 더듬다 보면 기억나는 것들은, 기억날 만큼의 인상을 남긴 어느 순간의 장면이거나 밥 먹을 때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이기 마련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망각'이다 보니 사람..

단상노트 2014.07.06

유치원 가는 길/ 엄마의 하루

frog in the forest by cotaro70s 비 오는 아침, 눅눅하고 우중충한 창, 오늘따라 무거운 몸에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 아이들 등원시간에 늦었다. 때마침 고장 나 1시간이나 느려진 벽시계 탓을 해보기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마음 같아선 아이들에게 뭔가 따뜻한 것을 먹이고 싶은데 염분이 적은 치즈스틱만 한 개씩 먹여 옷이나 겨우 입히고 일어섰다. 큰아이는 원복에 빨간 점퍼를 입히고 진한 곤색의 장화를 신기고 좋아 죽는 파워레인저 그림의 투명 우산을 들렸다. 작은 아이는 진홍색 바바리를 입히고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겼지만 아직은 혼자 우산을 들고 걷기엔 어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듯 스타일 빠지게 등에 업고 커다란 파라솔 우산을 썼다. 그래도 등에 업힌 채 좋아 죽는다. 아이들..

단상노트 201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