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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13

onmaroo 2013. 11. 4. 20:30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13

 

더러 우리 멋대로 말을 만들고, 고유 명사를 뒤바꾸고, 줄거리를 뒤섞고, 이 이야기의 서두에 저 이야기의 결말을 갖다 붙였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아니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본 적도 한 번 없이 그저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했을지라도, 우리는 아이에게만은 소설가였고 유일한 이야기꾼이었다. 20

 

한마디로 아이는 진정한 독자였다. 20

 

무상의 베풂. 아이는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로 말이다. 일상의 시간을 벗어나는 한순간. 모든 것을 접어둔 채…… 밤마다 듣는 이야기는 아이에게서 하루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닻줄이 하나하나 풀리면, 아이는 바람을 따라 항해를 했다. 한없이 가벼운…… 그 바람은 바로 우리들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41

 

그로부터 수 세기가 흘렀을 리 만무하다. 다만 삶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순간들에 영겁의 흐름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읽어야만 한다라는 신성불가침의 원칙들로 말미암아. 43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다만 어떠한 길들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52

 

소설을 소설처럼잃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151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연애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들에서이다. (중략)독서란 효율적인 시간 운용이라는 사회적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문제는 내가 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160-161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읽기에 길들게 하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63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책을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