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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인문고전 독서반 마지막 모임

onmaroo 2013. 11. 29. 09:12
1학기에 이어 인문고전 독서반 2학기 마지막 모임.
 마지막에 읽은 책은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2002). 이 책은 몇 년전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아침시간에 짬짬이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책이다. 그때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모두 녹음이 되어 팟캐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모임에서는 종로의 세미나실을 빌려 3시간 가까이 토론까지 벌였고, 그때 아이들과도 꼭 한번 읽고 싶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일이 이루어졌다. 
  인문고전 독서반 2학기 모임을 마치는 자리라 학교를 벗어나 이야기를 나눌 공간을 찾다가 정동길에 새로 자리를 잡은 '넛지살롱'을 찾았다. 페북을 통해 알게 된 곳으로, 까페라기보다는 책과 사람과 커피가 함께 있는 인문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넛지'(nudge)는 팔꿈치라는 뜻으로 팔꿈치로 옆구리를 살짝 건드리듯 어떤 변화를 강요하지 않고 유연하게 이끌어낸다는 '넛지효과'에 활용된 단어이다. 넛지살롱 원희운 대표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책과 인문학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공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아직 정식 오픈한 건 아니어서 간판은 없다. 장소 마련을 위해 미리 찾아갔을 때, 넛지살롱이 들어선 건물 앞에서 두리번 거리다 전화를 걸었더니 3층 창문에서 대표님이 나를 불러주셔서 다행히 찾게 됐다. 다음 주에는 간판이 달린다고 하니 찾기는 쉬워질 것 같다.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좋았다. 인문공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이 모여모여 이야기를 나눌만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곳이 학교 근처에 생긴 게 너무 반갑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이런 인문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서 작은 조각 케익도 사서 넛지살롱을 찾았다. 미리 테이블을 한 가운데로 모아놓아 정말 이 공간을 통째로 빌린 느낌. 아이들에게 뻥치듯 "샘이 아주 좋은 장소를 마련했다. '넛지살롱'이라고. 그리고 오늘 샘이 통째로 빌렸다."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됐다. 어쨌든 아직은 정식 오픈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표님께서 아이들과의 모임 자리를 반겨주셨다. 우리가 첫 손님이기도 했으니... 

 
 아이들의 반응은 너무도 좋았다. 커다란 칠판 앞에서 이런저런 낙서(?)도 하고, 책장을 둘러보면서 꽤나 만족해하는 표정들. 이곳은 차값을 내고 이용할 수 있다. 원래 5,000원이지만 학생은 좀 싸게. 그리고 대표님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신다.
  마지막 독서 모임이 훈훈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고, 올기의 발제 덕분에 책 전체 내용을 훑어 볼 수 있었다. 경제발전의 논리가 이끌어가는 사회는 마치 빙산을 앞에 두고도 '엔진'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타이타닉 호와 같다. 그리고 파이가 커진다고 나누어 가질 조각이 커진다는 착각은 하지 마라. 공정하게 분배되지 못하는 구조라면 아무리 파이가 커진들 모두의 파이 조각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큰 조각을 가진 사람은 더 큰 조각을 작은 조각을 가졌던 사람은 더 작은 조각을 갖게 된다. 또한 파이는 커지는 데 한계가 있다. 개발할 자연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러니 경제가 발전하면 모두가 풍요로워진다는 환상은 버려라.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 경제나 물질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대항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경제발전의 논리로 점철된 현재의 것들을 하나씩 버리고 빼고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엔진'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만이 작용하는 타이타닉 호가 결국 빙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멈추어야 한다'라는 가장 '현실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 등등.....
 어렵지 않은 용어와 표현들로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이 책은 아이들이 읽기에 적절하다. 표현은 쉽되, 내용은 무거운... 아이들이 읽고 생각하기에 적절한 책. 

 아이들과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 학기 또는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생각이 많이 자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나나 아이들이나 독서모임을 서로 능숙하게 끌어가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렇듯 아이들도 생각의 키가 조금은 자란 기분이다. 나는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란다, 성장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일과 그 순간은 중요하고 오래 기억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단 그동한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 
 -1학기 : 나이절 워버턴, <철학의 주요문제에 대한 논쟁> /  밀, <자유론> /  카프카, <변신>
 -2학기 : 조너선 색스, <차이의 존중>/   라 보에티, <자발적 복종>
         조지 오웰, <1984>, <동물농장>/  더글러스 러미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일단 평소 독서량에 비한다면 이만큼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뿌듯하고, 특히 평소에는 거들떠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책을 읽었다는 것도 뿌듯하다는 이야기. 나 역시 그렇다. 그리고 '함께' 읽은 것이 좋다는 이야기. 혼자라면 읽지도 못했을 거고 이해도 안 되었을 거고 생각도 못했을 텐데, 함께 읽으니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알게 되고 서로 생각이 다른 것도 알게 되고 내 생각도 다듬게 되는 느낌. 나 역시 그렇다. 책을 읽는 행위도 중요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갖게 된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생겨 좋았다는 점도. 
 하지만 시간이 짧아 책 내용만 살피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 책 읽고 모이는 시간의 간격을 좀더 길게 해서 한번에 오랜 시간동안 모임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 나는 개인적으로 나는 되도록 말을 아끼고 아이들이 침 튀어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교사이자 어른인 내가 말을 많이 할수록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꺼내는 걸 주저하기 쉽다. 그리고 내가 없어도 모임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즉 내가 있으나 없으나 독서모임이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