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사는가

onmaroo 2014. 7. 6. 01:10
3학년 담임을 3년 동안 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들의 추천서를 썼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들의 자소서를 보게 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고교 3년 동안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열중했다.
'스토리'(이야기)는 주제, 구성, 문체 3요소로 이루어졌지.
할 말이 있으니 주제가 있는 거고, 나름 하나의 흐름을 이뤄 짜임새 있게 흘러가니 구성이 있어야 하며,
쓰는 사람이 누군지를 글을 통해 알 수 있어야 하니 스타일(문체)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매 순간이 이야기나 소설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억을 더듬다 보면 기억나는 것들은, 
기억날 만큼의 인상을 남긴 어느 순간의 장면이거나
밥 먹을 때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이기 마련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망각'이다 보니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들 위주로 기억을 하되
대부분은 스토리가 있는 일들 위주로 지난 시간을 기억의 방에 남겨둔다.

대입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든 어필이 될 만한 스토리를 짜깁기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을 보면,
정작 그렇게 살아오지 못한 자괴감과 열패감 때문에 몇날 며칠을 학교 컴퓨터실에서 끙끙대는 모습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합격 수기라도 볼작시면 고교 3년을 정말 계획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며 치열하게 살아간 스토리를 보게 된다. 
대학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합격 예도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하나의 주제로 모든 게 귀결되고 정말 짜임새 있는 고교시절을 보냈으며 그걸 자기 스타일로 정해진 글자수에 맞춰 글을 써낸 것을 알려주는 까닭에, 
컴퓨터실에서 그런 합격 수기의 대상이 되고 싶은 아이들은 전전긍긍 자판을 두드리고 지웠다 쓰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노릇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선생도, 아이들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교과 성적과 스펙의 우열이 어느 정도 합격을 좌우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고는 있다. 그래서 더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서인가 상담을 하다보면 '저는 별로 한 게 없는데요.'라며 막막해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생활기록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둘이 머리를 맞대 어떻게든 잘 짜인, 일관성도 보이는 스토리라는 걸 만들려고 말이다. 그러다 이거랑 이거랑 연결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나를 소설가인듯 쳐다보며 감탄할 때가 있다. 정말 '스토리'를 만드는 거다.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만드는 거다. 그러니 아이들도, 나도 이때만큼은 소설가가 된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소설'의 기본 본질인 '허구적 이야기'라는 점과 맞닿아 있으니 이것 저것을 일관성을 지닌 것으로 연결짓는 너나 나나 그때만큼은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린 열심이다. 사실 삶이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기억은 소설가의 보이지도 않는 손을 꺼내 들고 정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기억의 편린과 그 순간의 감정들을 엮어가는 과정이 기억이 맡은 역할이고 기억을 소중히 다루는 이유가 된다. 그것이 기억이 아닌 자소서가 될지언정 너나 나나 기억의 역할을 대신 맡아 한껏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안쓰럽고도 참으로 대단하다. 

이제 1학년 담임이다. 기억의 역할을 대신 맡아 자소서나 추천서 글을 쓸 일은 없지만, 매해 그렇듯 아이들에 대해 스토리가 있는 기억과 학생부 기록을 해주고 싶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경험하는 것들이 이야기가 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매 순간이 이야기가 되도록 때론 치열하게 때론 즐겁게 때론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자기를 놓아두면서 살아가길 바란다. 네 삶이 이야기로 기억되는 삶이 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