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지더라도 빛나는 메달을 줍니다

onmaroo 2016. 10. 18. 13:01

 1. 9명의 아이들, 축구대회에 나가다.


  

 11명의 멤버를 채우지 못해 결국 9명의 아이들이 대회에 참가했다. 뭐 전국대회도, 선수권대회도 아닌 클럽대회 정도인데 아이들도, 부모들도 열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모두 딱히 긴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긴장이라기보다는 설레는 표정들이었다. 

 



 초등 2학년들의 시합. 축구선수도 아니고 친구들끼리 축구클럽에서 볼을 찬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코치 선생님도 있고, 축구의 기본기도 배웠으며 포지션 배정도 받았다. 전략도 나름 있다. 코치가 그라운드를 달리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소리치며 요구하는, 그거.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전략이고 뭐고 없다. 볼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우르르 몰려온다. 나름 자기 포지션을 지키는 아이도 있어서 뛰어가다가도 자기 영역을 넘어가면 멈춰 돌아오기도 한다. 초등 2학년 수준이야, 짐작은 되겠지만 그중에는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도 있다. 드리블을 하며 몇 명의 아이들쯤은 쉽게 제치고 슛을 날리기도 한다. 상대편 부모라면 그런 아이를 두고 나이나 학년을 의심해보기도 한다. 대체로 아이들이 볼을 차면 다리 힘이 부족해서 그런지 때굴때굴 구른다. 하지만 슛 좀 날리는 아이가 찬 볼은 '날아간다'. 팀에 그런 아이 하나만 있어도 팀 전체의 실력은 높아 보이고, 그게 상태팀이라면 이기기 어렵겠다는 예단을 부모들이 일찍 내린다. 다만 골을 적게 먹기만을 바라며 열심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응원한다. 

 



 우리 아이들 팀은 인원수도 이미 2명이 부족한 상태이고, 실력도 고만고만하며 슛 좀 날리는 아이는 없다. 다만 치고 달리는 아이 하나는 있어서 부모들이 거는 기대가 컸다. 그리고 소위 거미손, '야신'으로 불리는 골키퍼 아이도 있었다. 골을 잘 막기도 하지만 상대편 슛도 골대를 잘 비껴나간다. 모두들 그 아이의 실력이라 칭찬했다. 전후반 총 20분을 쉼없이 뛰어다닌 아이들은 신나고 떨리고 지쳤다. 결과는 1무 2패. 아이들은 부모 눈에도 최선을 다했다. 쉬지 않고, 요령 부리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달린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전략이랄 것도 없고, 실력도 인원도 부족했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부모들에게는 그게 마냥 대견하기만 했다. 


 어떤 아이들은 눈물을 훔쳤다. 경기 과정이나 실력 차이는 둘째치고 졌다는 사실 자체가 속상한 거다. 그런 친구를 위로해주는 아이도 있었다. 이기고 지는 경기이니 지고 났을 때 왜 속상하지 않을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자기들 실력에 체념하거나 멤버를 원망하거나 하는 눈빛은 없었다. 그냥 진 게 속상할 뿐이다. 다시 경기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에게는 처음의 설렘, 기대, 즐거움만 가득했다.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2. 1무 2패의 아이들, 구리빛 메달을 받다. 


 1무 2패면 메달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운영본부에서는 아이들을 불렀고 구리빛 메달 하나씩을 걸어주었다. 보통 이런 아이들 경기에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메달이나 선물을 준다. 프로 경기나 선수권대회가 아닌 이상, 참가한 모든 사람에게 참가상 정도를 줘야 운영이 될 터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아이들에게 '최선'에 대한 상을 주는 것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축구 경기이니 승패는 결정된다. 실력 차이도 눈에 보인다. 승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상을 준다. 그거야 당연하다. 하지만 패자에게는 졌으니 아무 것도 없고 다음에 잘할 생각이나 하라는 식의 냉정한 평가만 주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지려고 나온 사람은 없으며, 이기고 싶은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있다. 아마추어 경기나 대회가 참가상을 주는 것도, 냉정한 승부와 실력 경쟁보다 최선의 노력과 뜨거운 열의를 인정하기 때문 아닐까. 


 솔직히 살아가다보면 경쟁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경쟁이 가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경쟁에는 과정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경쟁의 과정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결과에 따라 그 과정이 부각되거나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성공한 경우 그 사람의 노력과 시행착오,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부각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력의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봐주질 않는다.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정을 격려하고 노력을 칭찬하는 것보다 성적이나 수상 여부에 따라 평가와 기록이 이루어진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평가와 기록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쟁에서 지거나 뒤처지면 메달도 없다. 힘껏 달려온 시간과 노력만큼 빛나는 구리빛 메달도 없다. 


3. '누구나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는 있어'?

 

 어느 동화를 본 적 있다. 곤충들의 운동회. 다들 하나쯤 잘하는 게 있어 번쩍이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지만, 우리 주인공은 뭘 해도 뒤처진다.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낙심한 주인공이 무심히 나뭇가지를 씹어먹고 있는데, 한쪽에서 '나뭇가지 씹어먹기 대회 우승자는 ~'하며 주인공에게 금메달을 걸어주었다. 모두가 주인공을 둘러싸며 축하해준다. 누구든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더라도 하나쯤 자기가 잘하는 걸 가지고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라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다른 동화책도 기억이 난다. 동물들은 제각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장기를 한껏 자랑한다. 하지만 우리 반달가슴곰은 겉으로도 화려한 것 하나 없고 자랑할 만한 것 하나 없어 풀이 죽는다. 낙담한 채 우연히 샘물을 들여다본 주인공은 샘물 위에 떠 있는 예쁜 반달 하나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건 바로 자기 가슴에 나 있는 반달모양의 털이었다. 그 순간 우리 주인공은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는 없는 예쁘고 자랑스러운 것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복해한다. 누구나 남에게는 없는, 그래서 자랑할 수 있는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남들에게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자신에게 있는 장점과 장기를 살펴보고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앞의 이야기나 뒤의 이야기나 그 자체의 메시지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기에 더없이 좋은 생각들이다. 그 동화책들을 폄하하거나 혹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둘 다 좋은 동화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보다 잘하는 게 특별히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적어도 아직은 찾지 못했다하더라도 그것때문에 속상해하는 아이에게는 여전히 세상이 메달을 주지는 않는다.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가 중요할텐데, 올림픽이나 선수권대회 정도라면 그 자격이 실력이 발휘된 결과여야 하겠지만 세상 살아가는 일과 학교에서는 그 자격이 최선의 노력과 진심어린 마음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남들보다 잘하진 못해도 내가 힘껏 달려온 만큼 빛나는 메달을 준다. 그러니 내가 지금 여기서 힘껏 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도록 말이다. 



4. 저도 메달을 주나요? 


  '누가 빨리 도달했는가'도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달려온 시간과 거리만큼 평가된다면 나는 나보다 빨리 도착점에 도달한 아이들과 똑같이 박수를 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달리기를 한다. 저 멀리 멀리 도착점이 있다. 출발 신호와 함께 힘껏 달린다. 달리고 달리다보니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내가 달리는 속도도 떨어진다. 나보다 더 빠른 아이들은 어느새 도착점에 도달했고 나는 뒤처져 겨우겨우 도달했다. 그래도 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도착했다. 


 "남들보다 늦었는데 메달을 주나요?"


 "그럼요. 지더라도, 뒤처져도 빛나는 메달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