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유치원 가는 길/ 엄마의 하루

onmaroo 2014. 4. 28. 19:51
frog in the forest
frog in the forest by cotaro70s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비 오는 아침, 눅눅하고 우중충한 창, 
오늘따라 무거운 몸에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 아이들 등원시간에 늦었다. 
때마침 고장 나 1시간이나 느려진 벽시계 탓을 해보기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마음 같아선 아이들에게 뭔가 따뜻한 것을 먹이고 싶은데 
염분이 적은 치즈스틱만 한 개씩 먹여 옷이나 겨우 입히고 일어섰다. 
큰아이는 원복에 빨간 점퍼를 입히고 진한 곤색의 장화를 신기고 
좋아 죽는 파워레인저 그림의 투명 우산을 들렸다. 
작은 아이는 진홍색 바바리를 입히고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겼지만 
아직은 혼자 우산을 들고 걷기엔 어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듯 
스타일 빠지게 등에 업고 커다란 파라솔 우산을 썼다. 그래도 등에 업힌 채 좋아 죽는다.

아이들과 함께 걷는 등원 길은 대개 나의 재촉과 큰아이의 장난과 그 끝에 이어지는 사고와
나의 흘겨 뜨는 뱁새눈으로 반복되지만, 
그래서 가끔 셔틀버스 신청한다는 협박과 절대로 이제부턴 엄마 말씀 잘 듣겠다는 
거짓된 약속이 오가기도 하지만 
실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행복한 시절의 한 때임은 분명하다.
특히 봄이 되면서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여린 잎새가 돋아나면서
봄꽃 이름을 가르쳐 주는 재미가 쏠쏠하고, 성의 없는 학습태도에도 별로 노엽지 않은 것이
봄을 닮은 아이들과 함께 걷는 기쁨 때문이다.

Flowers feat. small blury bug!
Flowers feat. small blury bug! by TeryKats 저작자 표시비영리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좀 예외다. 좀 더 서둘러 주었으면,
웅덩이 따위 지나치며 궁둥이 하늘로 치키지 않았으면, 
장화 신은 발로 맘껏 튀기지 말았으면, 
씽씽카 타고 둘러가는 길로 우산 쓰고 둘러 걷지 않았으면,
무엇보다 거북이 보러 가자고, 멀리멀리 돌아가자고 떼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등원에 늦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이는 오늘도 태평하다.
걷는 내내 오늘은 유치원에서 바깥놀이 못 하겠다고 걱정하고 
하원 후 비에 젖은 놀이터에서 놀지 못함에 한탄하고
오늘같이 비 오는 날 연못에 거북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 죽겠단다.

좀 빨리 걸어라, 조심해서 걸어라, 해도 아이는 결국 나무 계단에서 까불다가 엎어진다.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은데 혼날까봐 얼른 일어서지도 못 하고
햄스터처럼 얼어 멈춘 채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또록또록..
화가 나려다 화내도 젖은 옷이 당장 마르진 않지, 마음을 다스리며 수선을 떤다.
“많이 다치지 않았어?” 그제야 “괜찮은 것 같은데?”하며 겸연쩍게 일어서는 녀석..
으이구,, 하지만 이미 늦었고 옷도 버린 김에 거북이 보러 가자고 선심을 쓴다.
많이 둘러 가는 길을 걸어가며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길도 미끄럽고 위험하니 
담부턴 최대한 지름길로 가자고 다짐도 잊지 않는다. 

거북이가 있는 연못에 도착해서는 모두 다 소리 없이 눈으로 거북이를 찾는다. 
원래 햇볕 좋은 날엔 바위 위에 올라와 몸을 말리느라 몇 마리인지 세어보기가 좋은데
비 오는 오늘은 물 속이나, 물 밖이나 마찬가진지 한 마리도 찾을 수가 없다.
큰 아이가 용케 물 속, 돌인지 거북인지도 모르겠는 한 마리를 겨우 찾고는 쿨하게 돌아선다.
오히려 내가 안달이 나, 한 마리는 더 찾고 가야지, 하며 둘러온 본전 생각을 한다. 
원래 네 마리인데,, 반은 찾고 가야 하는데.. 어쩔 수 없는 숫자, 난 어른임이 분명하구나.

Turtle Soup
Turtle Soup by PamLink 저작자 표시비영리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했던 거북이를 보았고
덤으로 빗물이 차오르자 갑자기 돌아가는 물레방아도 보았고
조금 더 둘러오느라 엄마와 함께 걷는 시간이 늘어났음에 즐거워하며
오늘 아침 분량의 즐거움을 만끽한 것으로 충분했던 거다.
유치원 앞에 다다르자 안에 있을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흥분하여 
급하게, 형식적으로 내게 입을 맞추고 유치원 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젖은 솜처럼 무거웠던 내 몸이, 우중중한 하늘이 
봄날 햇볕에 마른 빨래처럼
환해지고 깨끗해지고 보숭보숭해졌다. 

분명 아이들과 있으면 늘 환한 봄날이다. 
-2014년 4월 28일 아이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