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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기적, 일상의 기적

일상으로 돌아가며 흔히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아쉬워한다. 여행은 그만큼 좋았던 일이고 일상은 돌아가기 싫은 거다. 그런데 세월호와 함께 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일상마저 빼앗겨 버렸다. 그 아이들에게는 여행과 일상이 죽음과 삶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일상과는 너무도 다른 ‘사건’을 접하며 슬픔과 분노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 그렇고 그런 일상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낸 것처럼 지낸다. 일상을 빼앗긴 아이들과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들. 삶을 빼앗긴 아이들과 삶을 지속하는 우리들. 물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비난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저 그렇고 지겹다고 말하는 ‘일상’에조차 돌아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과는 너무도 다르면..

단상노트 2014.04.24

과자 봉지 뜯어줄까?

저녁시간 아이들이 교정에서 왁자지껄 놀고 있는 걸 보러 중앙계단으로 나오니 대학에 다니고 있는 졸업생 하나가 서 있었다. 대화는 거기서 시작됐다. 대학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은 걸 해보고 있는데, 딱히 자기가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나 공부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고, 그래서 어떤 일에 푹 빠져 공부하고 경험하며 지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나도 그때쯤 했었던 고민인데, 딱히 만족할 만한 답을 해주진 못했다. 그냥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늘 하는 말로, 아직 그걸 확실히 정할 수 있을 만한 나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잔뜩 펼쳐보고 고민하는 나이라고만 ..

단상노트 2014.04.16

너는 바다고 길이다.

정호승 시인의 '무인등대'를 읽다 바다에도 길이 있다. 배가 가는 길이 바닷길이 되기도 하고, 바다 위로 쏟아지는 달빛이 바닷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등대는 그 바닷길을 비춰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야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사는 방식도 다르고 살아가는 이유도 다르듯 사람마다 걸어가는 길은 넓은 바다의 정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바닷길처럼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그렇기에 바닷길을 비춰주는 등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 내 인생의 롤모델인 사람이 등대이기도 하고, 내가 꿈꾸는 삶의 목표가 등대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등대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나 자신이 누군가의 등대가 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내 삶을 살아가는 건 결국 '나'이지, 내가 등대로 여기는 사람이 내 삶을 살아주는 건..

메모노트 2014.04.03

매일 한 편의 시라도...

매일 한 편의 시라도 읽기로 결심했다. 시집을 읽다보면 하루에도 열 편도 넘게 읽을 수 있지만, 매일 시집을 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도 그 유명한 시인의 시집 한 권 사지 않고 문제집 속에 선별된 시들만 읽어대는, 그리고 그걸 쪼개고 나누고 흩어놓는 식으로 가르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해본다. 그래서 매일 시 한 편은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두 권을 사서 읽고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시집 을 읽으며 단상이라고 적을 요량으로 이 글을 쓴다. 이슬의 꿈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 이슬은 사라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이슬은 햇살과 한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 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한..

메모노트 2014.04.03

모두가 반장이고 부반장이 되면?

반장과 부반장의 차이 해마다 반장 선거는 참 어렵다. 선거 방식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나름 경쟁이 치열할 때도 있으며, 희비가 엇갈릴 때에는 축하만큼이나 안타까움이 클 때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반장을 하려고 나오지 부반장을 하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인가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면, "제가 반장이 된다면~"이라고 하지 "제가 부반장이 된다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는 선거 방식과도 관련이 있겠지. 선거도 '최다 득표자가 반장, 그 다음 순위 득표자가 부반장' 식으로 순서대로 학급 임원 자리를 맡기니깐. 그런데 정말 '나는 부반장이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을까? 반장이라고 하면 앞에 나와서 말도 잘해야 하고 아이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고..

단상노트 2014.03.20

그 샘(함민복)

그 샘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3학년 올기에게 빌려주었던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을 몇 달이 지나서야 돌려받았다. 그간 이 시집을 내가 샀던가 싶게 잊고 있었던 터라, 마치 선..

메모노트 2014.03.17

첫 만남과 무리수 140303

무리-수無理數 명사 1 . 실수이면서 분수의 형식으로 나타낼 수 없는 수. 예를 들어, , log2, π [같은 말] 3.14159… 따위가 있다. 2 .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를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시각이 대략 12시 가까이 되었으니, 첫 담임을 만나는 설렘만큼이나 점심을 먹고 싶은 식욕도 들고 일어날 시간이었을 거다. 더구나 담임이 처음 들어와 간단히 인사를 하고 '우선 전달사항이 있다.'면서 학생카드를 잔뜩 나눠주고 사진은 몇 장 어디에 붙여오고 여분으로 몇 개를 가져오라는 등 신신당부를 했으니... 여기서부터 내가 무리수를 두려고 작정을 한 거다. 한참을 그런 이야기만 하다가 이제 내가 준비해온 걸 부끄럽게 꺼내들었는데, 그게 ..

단상노트 2014.03.08

연우를 재워라!

:: 연우 자장가(토닥토닥) (듣기) 진서 때부터 들려주던 자장가 앨범이 있다. 흔히 듣는 클래식한 자장가는 아니다. 전래 자장가를 모아 부른 '자미잠이: 머리끝에 오는 잠'. 자미잠이(CD책) 카테고리 유아 > 그림책일반 지은이 편집부 (보림출판사, 2004년) 상세보기 지인에게 선물받아 잘 때 틀어주었더니, 진서는 이 노래들을 좋아한다. 잘 때 엄마나 아빠가 불러주면 잠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나나 아내나 이 앨범의 노래들은 모두 좋아하고 이젠 따라 부르고 외워 부를 정도. 지금은 진서에게 들려주기보다는 연우에게 들려준다. (벅스 뮤직으로 들려주다가 가격이 올라 벅스 어플을 지운 후 엄마가 주로 불러준다.) 엄마가 육성으로 불러주며 재우기 시작한 뒤로는, 불 끄고 자려고 하면 어설픈 발음으로 연우가 ..

[노래] 연우의 노래 20140307

::연우의 노래_'작은 주전자에요'(듣기) 연우가 올 2월로 3살이 됐다. 말도 잘 알아듣고 말문도 조금씩 트이기 시작하는 연우. 노래책을 듣고 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노래도 따라 부르고 때로는 뭐라 흥얼거리기도 한다. 진서랑 읽는 동화책 녹음을 팟캐스트로 올린지가 2년이 넘었다. 첫 녹음이 팟캐스트로 올라간 게 2011년 11월 25일자 '구름빵'이었으니... 그 중간중간 진서의 노래도 녹음해서 올렸는데, 이젠 연우의 노래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연우가 좋아하는 '작은 주전자에요.'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된 노래. 끝부분에 '쭉!' 하는 소릴 낼 때가 제일 귀엽다.

68. 플랜더스의 개(2ver.)

::플랜더스의 개_2014(듣기) '플란다스의 개', '파트라셰', '파트라슈'.... 이름이 다르게들 책이 나온다. (뭐, 외국어를 그대로 한글로 옮기는 거니 그럴 수도 있고.) 어쨌든 진서가 좋아하는 동화책 중에 하나는 '플랜더스의 개'다. 진서는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 그러니깐 네로와 파트라셰가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꼭 눈물을 흘리곤 한다. 더 어릴 때에는 슬픈 감정이 터져 나와 결국 소리내어 울기도 했는데, 지금은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그리고 그렇게 울고 있는 자기가 부끄러운지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 책이 왜 좋냐고 물으면, 진서는 "그냥 재밌고 슬프잖아."라고 대답한다. 읽고도 슬픈데 그게 책을 읽는, 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된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걸 거다.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