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모두가 반장이고 부반장이 되면?

onmaroo 2014. 3. 20. 03:41

반장과 부반장의 차이

 

해마다 반장 선거는 참 어렵다. 선거 방식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나름 경쟁이 치열할 때도 있으며, 희비가 엇갈릴 때에는 축하만큼이나 안타까움이 클 때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반장을 하려고 나오지 부반장을 하려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인가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면,
"제가 반장이 된다면~"이라고 하지 "제가 부반장이 된다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는 선거 방식과도 관련이 있겠지. 선거도 '최다 득표자가 반장, 그 다음 순위 득표자가 부반장' 식으로 순서대로 학급 임원 자리를 맡기니깐.

그런데 정말 '나는 부반장이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을까? 반장이라고 하면 앞에 나와서 말도 잘해야 하고 아이들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고 그냥 반을 위해서 반장을 도와 열심히 일할 마음은 있는데....라며. 아니면 나는 이 친구랑 같이 학급 임원이 되어서 일을 하면 잘 할 것 같은데...라며.

문득 '부반장' 자리는 왠지 '반장'이 못된 아쉬움이 남는, 하지만 선출은 된 그런 자리의 인상이 태그처럼 달려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부반장'이 된 게 기분 나쁘지는 않다. (반장이 되고 싶은 기대가 크다면 기분 나쁘거나 속상할 수도...) 하지만 '부반장'도 어엿한 학급 임원이고 그렇게 뽑히도록 하면 더 좋지 않을까.

 

By: Colleen

모두가 반장이고 부반장이 되면?

 

이러면 어떨까? 이건 학급원이 한 20명 남짓까지 줄어들 경우에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매달 두 명이 짝을 이뤄 학급 임원을 하면 어떨까. 반장, 부반장 타이틀을 떼도 좋다. 그냥 너도 반장, 나도 반장. 다만 역할만 나누거나 정하자. 기존의 반장과 부반장이 하는 일을 쭉 나열해보고 크게 둘로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교무실에 불려갈 일에 대해, 즉 대외적인 업무에 대해서 하나. 학급 내의 일에 관해서, 즉 대내적인 업무에 대해서 하나.

아니면 두 명 중 하나는 반장, 하나는 부반장으로 런닝 메이트로 나올 수도 있다. 이것도 임기는 한 달이다. 물론 엄청 바쁜 달도 있고 엄청 한가한 달도 있겠지. 그거야 서로 감안하고, 중요한 건 둘씩 한 달동안 반장과 부반장 일을 하면, 10번 2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다. 3월부터 6월까지는 각 1달씩(4달*2명=8명), 7월과 8월은 방학이 끼어 있으니 묶고(2명), 9월부터 12월까지 또 각 1달씩(4달*2명=8명), 1월과 2월도 보충수업이 있긴 하지만 방학이 있으니 묶고(2명). 이러면 20명이 누구나 한번은 임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면 현재 20명 이상의 학급은 임원을 못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소수의 학생이 임원을 못하게 될 경우는 이 또한 역차별이 될 수 있으니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 2명을 짝을 이룰 경우에도 짝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소외감이 클 수도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누구는 재수없게 바쁜 달에 임원이 되어 고생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매달 바뀌는 임원으로 선생님들도 헷갈리고 학생회 회의에 참석하는 학급 대표가 매달 바뀌는 일도 발생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문제가 참 많다. 어떻게 보면 어설프고 성급하며 웃긴 생각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반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야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반장'에 대한 은근한 반쪽 자리 인상도 사실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반장'과 '부반장'으로 선출된 것은 그만큼 나머지 아이들의 기대나 신뢰가 크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 한 학기를 충분히 맡길 만하다. 다만 '반장'과 '부반장'이란 타이틀이 혹시 학생부에 기록되어 대입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순수하게 '반장'이나 '부반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나 정작 한 두표 차이로 떨어지고 났을 때 얼마나 안타까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학급임원 자리가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 대단하거나 소위 '권력'이 쥐어지는 것도 아닌데 까짓 나눠 가지면 어떤가 싶어서다.

1인 1역처럼 학급 내에서 맡은 일에 지위나 높낮이가 없이도 학급이 운영되면, 반장과 부반장이란 타이틀을 아예 없애고 1인 1역처럼 역할로 이름을 부여하면 어떨까? '학급회의 진행', '학급 전달사항 안내'(소리통?) 등등...

:: 예전에 이런 생각도 했다. 작년에 우리학교에서 수능 만점을 받은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수시로 대학에 합격한 상태라 수능 만점이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 그 점수, 다른 아이들한테 조금씩 나눠주면? 까짓것 점수 좀 나눠주면 어때.  수능 점수 1, 2점 차이가 당락을 좌우한다면 몇 명을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거야.....라며.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들 앞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냈을 때 다들 실없는 말 한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도대체 이 학교에서 나누고 있는 건 뭐지? 죽기 살기로 공부하고 성적표 받고서 울고 웃는 마당에, 모두 각개 전투로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나누고 있는 건 뭐지?

::(이런 글 쓰면, 우리반 반장하고 부반장하고 후보였던 아이들이 나 싫어하면 어쩌지?)

이 글 읽고 시덥잖은 선생이라 말해도 괜찮다. 그냥 나 혼자 하는 생각이니 신경은 쓰지 마시라.

2014. 03. 21

onma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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