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너는 바다고 길이다.

onmaroo 2014. 4. 3. 11:31
정호승 시인의 '무인등대'를 읽다

바다에도 길이 있다. 배가 가는 길이 바닷길이 되기도 하고, 바다 위로 쏟아지는 달빛이 바닷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등대는 그 바닷길을 비춰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야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사는 방식도 다르고 살아가는 이유도 다르듯 사람마다 걸어가는 길은 넓은 바다의 정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바닷길처럼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그렇기에 바닷길을 비춰주는 등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 내 인생의 롤모델인 사람이 등대이기도 하고, 내가 꿈꾸는 삶의 목표가 등대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등대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나 자신이 누군가의 등대가 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내 삶을 살아가는 건 결국 '나'이지, 내가 등대로 여기는 사람이 내 삶을 살아주는 건 아니다.

무인등대

등대는 바다가 아니다
등대는 바다를 밝힐 뿐
바다가 되어야 하는 이는
당신이다

오늘도 당신은 멀리 배를 타고 나아가
그만 바다에 길을 빠뜨린다
길을 빠뜨린 지점을
뱃전에다 새기고 돌아와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방파제 끝
무인등대의 가슴에 기대어 운다

울지 마라
등대는 길이 아니다
등대는 길 잃은 길을 밝힐 뿐
길이 되어야 하는 이는 오직
당신이다



 아이들이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는 어느 대학 신입생인 선배가 등대가 될 수 있겠지. 아니면 죽어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인 대학 자체가 등대가 될 수도 있겠지. 아니면 내 학원 스케줄을 짜주고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챙겨주는 고마운 엄마가 등대가 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며 우는 아이 앞에 앉아 있는 선생이 그때만큼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등대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선배도, 대학도, 엄마도, 선생도 '등대'가 될 수는 있겠지만 '바다'와 '길'이 되어주지는 못하지. 

 문득 어제 송샘과 한참을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교사들끼리도 수업이야기 좀 나눴으면 한다, 우리가 각자 하는 교육활동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꿈꾸는 건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등등.

 그 중 허샘이 하고 있는 MP14의 좋은 점을 말하게 되었는데, 아이들 스스로 공부를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허샘 나름의 경험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 좋은 교육활동이란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지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로는 아이들 스스로 깨우치고 해 나가는 거라는 이야기.

 그때 이 시가 생각났다. 선생이 아이들에게는 등대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정작 바다가 되고 길이 되는 건 아이들이라는 것. 우리가 교실에서 참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건 '등대'로서의 교사의 역할이 아니냐는 것.

그러면 어쩌면 교사에게는 아이들이 '등대'가 되어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선생도, 아이들도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등대'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바다'가 되고 '길'이 되는 건 우리 자신이라는 거는 잊지 말아야지. 

2014.04.02
onmar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