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세월호의 기적, 일상의 기적

onmaroo 2014. 4. 24. 01:14


 일상으로 돌아가며
 
  흔히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아쉬워한다. 여행은 그만큼 좋았던 일이고 일상은 돌아가기 싫은 거다.  그런데 세월호와 함께 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일상마저 빼앗겨 버렸다. 그 아이들에게는 여행과 일상이 죽음과 삶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일상과는 너무도 다른 ‘사건’을 접하며 슬픔과 분노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 그렇고 그런 일상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낸 것처럼 지낸다. 
 
일상을 빼앗긴 아이들과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들. 삶을 빼앗긴 아이들과 삶을 지속하는 우리들. 
 물론 그런 우리의 모습을 비난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저 그렇고 지겹다고 말하는 ‘일상’에조차 돌아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과는 너무도 다르면서도, 그제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가 정말 가슴에 안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싶어서이다. 
 공간은 삶을 구속하기도 한다. 진도 앞바다에 서 있다면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삶은 없을 수 있다. 서울에 있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문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안고 가고 있는가이다. 달리 말하면 진도 앞바다와 서울이라는 곳이 떨어진 거리만큼 우리는 사건과 일상 사이를 동전 뒤집듯 건너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거다.  

 그래도 될까?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나도 내 삶을 살아가야하니......"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몰라."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기쁨과 안도감보다는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어린 학생들조차 그 죄책감을 벗어던지기 어려워하고 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나도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딘가 세월호와 내 삶은 엄밀히 말하면 별개라는 식의 구분선이 그어져 있는 것만 같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하니.’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을 근거로 우리의 행복을 자족하려는 마음에도 너와 나의 구분선이 보이지 않게 그어져 있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며 하는 말이나 생각들일 거다. 하지만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며 과연 안고 가고 있는 건 저 수준이 아닌가 싶어 부끄럽다. 
 
"어른들은 모두 선생님입니다. 우리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분들입니다. ‘선(先)생(生)’이기 때문에 선생님 말 들어서 나쁠 게 없다던 그 말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우리들은 어른들의 말을 믿었지만 어른들은 우리들의 손을 놓았습니다. 우리는 언론조차도 믿지 못할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기적처럼 태어났기 때문에 기적처럼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또래의 어느 여학생의 글 중

 어른들인 우리의 잘못이라고 자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인 우리를 원망하고 있다. 그런데 기적과도 같은 삶이자 일상으로, 그저 고개만 돌리면 또는 그저 동전을 뒤집으면 되는 것처럼 돌아가며 아무 것도 안고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나마 일상으로 돌아와도 슬픔과 미안함과 죄책감이 꼬리를 달고 따라온다면, 
 세월호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야 한다. 뉘집 아들놈처럼 진심으로 슬퍼할 줄도 모르고 실종자 가족들을 염려할 줄도 모른다면 세월호에 대한 소식도 들으려하지 말고 자기 일상에나 충실하면 된다. 
 아니면 일상으로 돌아가되 가슴에 안고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내 일처럼 여겨 느끼는 슬픔이건,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분노이건, 무능한 정부와 비열한 언론에 대한 분노이건, 어른들의 세상에 대한 죄책감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건, 앞으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건 내 좁은 가슴에라도 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호의 기적, 그리고 일상의 기적

"우리는 신비 안에서, 기적에 의해 살아 있다." 
"삶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
-웬델 베리, <삶은 기적이다>
 
 세월호 안에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기적을 바라는 것처럼, 그 아이들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은 ‘기적’ 그 자체이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와 선생님과 그 배 안의 사람들과의 만남 모두가 기적 그 자체였을 거다. 구조되는 여학생이 애타게 친구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적같이 만난 친구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우주에 남게 된 두 동료가 끈으로 서로의 몸을 묶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결국 하나가 그 끈을 끊어 혼자 남아 있다 지구로 귀환한 후 일상과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그래비티’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기적이고, 내 삶의 울타리 안에서 만난 사람들도 기적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애절함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으나, 가족과 친구와 사람들과 이 세상과 일상이라는 ‘기적’의 다른 이름들과의 끈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그 간절함을 가슴에 간직하고 돌아가는 일상이라면, ‘그 사건을 보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겠어.’로 그쳐서는 안 된다. 나도 사실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큰 기적과도 같이 만난 사이인지’, ‘그러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라며 말이다. 그건 슬픔은 슬픔대로, 자족적인 행복은 행복대로 느끼는 거니깐. 내 삶과 감정의 울타리가 고작 거기까지밖에 쳐 있지 않았고, 그건 누구에게라도 넓힐 준비가 된 울타리가 아니라 우리 가족과 우리 학교라는 작은 공간에 구속된 채 지들끼리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굳고 견고한 벽이었던 것만 같다. 그런 삶에 도대체 무엇이 끊임없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땅따먹기, 다시 해라. 

 세월호에 남겨진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기적과도 같은 삶과 일상이 온전히 우리 삶과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이미 우리가 삶의 울타리를 그 아이들에게까지 치고 있어서이다. 어린 시절 자주 했던 땅따먹기는 자기 땅은 넓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친구의 땅과 겹치면서 넓히지는 않았다. 삶과 일상의 울타리가 벽으로 세워진 순간부터 땅따먹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다.  땅따먹기를 하면서도 서로의 울타리가 겹치는 그 순간이 기적인 거다.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서는 순간에 잠깐 멈춰보자. 세월호는 세월호대로, 내 직장과 학교와 가족은 그 나름대로 선을 긋고 벽을 세워 돌아서고 있는 건 아닌지. 슬픔은 슬픔대로 남겨두고 돌아서는 건 아닌지. 언제든 돌아서서 다시 슬퍼할 준비만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세월호의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거나 다름없는 ‘기적’ 같은 일상 속에서 나는 지우지도 못하는 선이나 무너뜨리지도 못하는 벽 안에서 기껏해야 가족과 학교 울타리의 소속감과 상대적인 행복감에 젖어 다른 세상을 살아가듯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어른으로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지만 기껏해야 선장 한 놈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참 못난 부모구나,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 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 대한민국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요." 
   -어느 실종학생 어머니의 말


 나도 너도 학교에서 그 너머로 눈을 돌리지 못할 바에는, 또는 내가 살고 있는 땅 위에 동그라미 선을 그려놓고 누구랑 맞닿아 있고 언제든 지우고 넓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할 바에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슬퍼하되 조용히 입 다물고 침묵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슬퍼하며 가슴에 간직한 것들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가되 내 삶에 무언가가 끊임없이 개입하도록 놔두고 삶과 일상의 울타리를 넓히는 데 치열하고 예민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배우도록. 그게 세월호에 바라는 기적이고 우리에게 남겨진 일상의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며, 세월호를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onma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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