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너는 어떤 꿈을 꾸니?

onmaroo 2013. 1. 31. 18:34

  '너'를 지지해.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시지 않으셨더라면...

 

1학년 때 전학을 갔던 아이다. 이과로 진로를 바꾸고 싶어 전학을 고민하면서 몇 번 상담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아이의 부모님은 힘들게 외고에 들어왔는데 일반고 이과로 전학을 가겠다는 딸을 걱정하시며 선뜻 그 생각에 동의를 표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인이와의 상담에서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이공계가 적성에 맞고 그쪽과 관련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가 분명해보였다.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에 따른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그래서 본인의 의사가 분명하고 그에 대해 확신이 있다면 부모님을 설득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한 것 같다. 그래서 다인이는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다. 


  이과로 진로를 바꾸고 일반고가 아닌 자사고로 편입을 해서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며 어제 다인이가 찾아왔다. 내가 진학부에 있는 관계로 그 학교에 대해 시시콜콜 물어봐서 좀 미안한 대화가 되긴 했지만, 1학년 담임이었던 나를 찾아온 것이 내심 나로서는 고마웠다. 그리고 한 달동안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산 펜과 초콜렛을 선물로 받았다. 간단하게 쓴 메모와 함께...


선생님! 선생님이 1학년 때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했을 거에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학기 초 면담을 할 때 꼭 물어보는 것이 꿈에 대한 것이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대개 직업을 말한다. 변호사나 검사가 되고 싶어요, 국제 전문가요, 외교관이요....  그런데 그 직업의 사람이 되고 난 후의 모습을 그려보지 못한 경우가 많고, 아니면 그저 막연한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꿈이요? 음... 외교관이요. 외교관이 되고 나면요? 음... 여러 나라 사람들을 두루 만나서 좋고 우리나라를 알리는...'  안타까운 건 자신의 꿈을 그릴 때 직업에 한정하거나 그 이후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무슨 대학, 무슨 학과에 붙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고등학생에게 대학 합격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이며, 희망 직업을 꿈과 동일시하는 것은 아직 먼 이야기이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정보도 경험도 없는 상태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아이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만든 어른들의 잘못이 크기는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야 할 나이에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생각하게 되는 모습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다는 아이는 나중에 하나를 고를 때에도 행복한 고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지 못한 아이는 무엇을 선택하는 과정이 무기력하거나 괴롭기만 하다. 어차피 비슷한 시기에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면 질적으로 다른 과정과 고민의 시간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학기초 상담에는 꼭 꿈을 물어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너의 꿈은 뭐니?'


 이 아이처럼 나와의 이야기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 역시 모든 아이가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번쯤 자신의 꿈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할 때 자기가 걸어갈 길이 조금이나마 보이고, 그 길에서 무엇을 해야할지가 정해질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그 곁에 부모든, 친구든, 교사든 그 고민과 선택을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아이는 행복할 것 같다. 


 얼마전 읽었던 조벽 교수님의 책(<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에서 본 것이 떠오른다. 교사는 학생들의 인생 대본 작가가 되기도 한다는, 교사란 학생들에게 소중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라는 말. 교사의 권위를 강조한 말이 아니라, 그만큼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니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이다. 내가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동일한 것이기는 하더라도, 아이들 각자가 받아들이는 정도나 마음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교사의 말과 행동은 신중해야 하고, 반면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교사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지?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우리반 아이들 하나하나에게도 내가 말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되묻는다. '교사'로서 살아가는 일은, 그래서 '교사'가 되기란 참 어렵다. 그래도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어했던, 교직에 처음 뜻을 두기 시작했던 그때의 마음과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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