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freedom of speech over 'Dole'

onmaroo 2012. 8. 23. 20:09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프레드릭 게르텐 감독, 스웨덴, 2012)





바나나로도 유명한 다국적 기업, 글로벌 기업인 'Dole'사의 추악한 이면을 들쳐낸 다큐멘터리 '바나나 소송사건(Bananas)' 상영을 저지하려는 'Dole'사와 이에 끝까지 맞선 감독 프레드릭 게르텐(스웨덴). 'Dole'사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과정과 결국 'We have won.'의 글귀로 승리를 얻어내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 


 니카라과 농부들이 금지된 살충제를 사용한 'Dole'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바나나 소송사건'을 한 영화제에서 끌어내는 것부터 시작하여 'Dole'은 감독과 영화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엄청한 위협과 압박을 가한다. 영화조차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가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언론을 몰아가고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되는 법정 싸움을 벌여 감독을 압박한다. 


 자본의 손길이 언론과 영화제에까지 미칠 수 있으며, 그 손길이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정중한 듯하지만 엄청난 위협의 목소리가 담긴 편지가 전달된다. 심지어 이 사건을 다룬 스웨덴의 작은 언론사의 기자에게 일일이 즉시 보내는 'Dole'사의 이메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개인적으로 이 다큐를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값싸고 노란 바나나에 붙어있는 친근한 상표 'Dole'. 그 다국적 거대기업의 자본은 언론을 뒤흔들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무서운 힘을 현실에서 가지고 있다. '너는 지금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거야!'라고 비판하면 'Dole'은 '너는 앞으로 엄청나고 무서운 대가를 치를 거야!'라고 위협한다. 거대기업을 상대하기에는 게르텐 감독과 그 영화사는 너무 작다. 또한 'Dole'이 손해배상과 그로 인한 파산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이들을 옥죄이는 과정은 내가 보기에도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을 떠올리게 한다. 다행은 우리는 '다윗'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런 비유가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골리앗'은 그 덩치와 힘만으로도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스웨덴 의회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정치적인 계산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게르텐의 처지를 이해한 한 의원의 도움으로 스웨덴 의사당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의원들은 탄원서에 서명하고, 감독에게 초당적 차원의 힘을 실어준다. 이로써 상황은 역전된다. 'Dole'은 소송을 취하하고 감독이 'Dole'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에서는 오히려 손해배상을 받으며 승소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스웨덴에서 일어난 'Dole' 바나나 보이콧 움직임이 큰 몫을 차지한다. 스웨덴의 여론과 의회는 'Dole'사의 부당한 횡포에 반기를 들었고 표현의 자유라는 중요한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데 힘을 모으게 된 것이다. 여론은 'Dole'사와 같은 거대 자본의 손길에 힘없이 휘둘리기도 하지만, 그 손길의 정체를 알아내고 이를 뿌리치면서 맞서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Dole'사에 맞선 감독에 대한 동정이나 응원 정도로 본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겨 있는 가치인 표현과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억누르는 자본의 횡포를 문제삼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을 모으고 이끌어내기보다는 여론이 모이고 무언가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부정할 수 없는, 지켜낼 만한 가치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바나나가 흔드는 세상


 1시간 넘는 시간동안 이 영화를 보면서 긴장과 두려움과 분노와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변을 살펴보게 된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고 있는 것들 중에 'Dole'사와 같은 거대자본이 휘두르고 있는 불합리하고 추악하며 부당한 힘들이 내 삶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얼마나 뒤흔들고 있을까.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또다른 국가이자 권력으로 흔히 불리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모르고 살거나 모른 척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자본과 권력 앞에서 '다윗'도 처음에 느꼈을 두려움과 무력함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골리앗' 앞에서 나는 한낱 작은 존재일 뿐이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과 무력감. 하지만 희망이 그저 긍정적인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한 행동과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러한 세상 속에 갇혀 라 보에티가 말한 '자발적 복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뒤 마트에 갈 일이 있다. 마트에 가면 'Dole' 상표가 붙은 바나나를 보게 될 거다. 예전엔 바나나만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Dole'이란 글자가 눈에 먼저 띌 거고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라는 다큐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Dole' 상표가 붙은 바나나는 안 살 것 같다. 

-2012.08.23. onmar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