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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김종철)] 생명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예의

onmaroo 2011. 10. 21. 16:08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녹색평론서문집
카테고리 인문 > 한국문학론
지은이 김종철 (녹색평론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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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예의-정직한 고백에서부터 

 

 “우리의 작업이 설사 뜻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도처에서 삼림이 벌채되고, 자원이 낭비되고, 강물과 토양과 대기가 썩어가고 있다. 일요판이 나오기 위해서 캐나다의 숲이 하나씩 없어져야 하는 시대에, 이 아무리 재생종이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보려고 애쓴다 해도 결국 헛일일 가능성이 크다. 가급적 공해요인을 줄이기 위해서 재생종이를 이용하고, 비닐코팅을 거부하고, 색채와 사진을 회피한다손 치더라도 책발간 작업이 어떤 식으로건 생명공동체에 부담을 준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바랄 수 있는 것은 죄를 짓되 그것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일생 동안 단 한 그루의 나무도 심어본 일이 없이 이렇게 종이를 허비하고 살아도 되는가? 지금 제2호를 내놓을 준비를 하는 순간에도 이런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우리는 도망갈 수가 없다. ” (김종철, 제2호 서문, 1992) 

  김종철이 을 발간하면서 쓴 서문을 모아놓은 책 (녹색평론사)에서 발췌한 글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공동체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주체는 바로 인간 자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문명’과 ‘편리’를 지속시키기 위해 만든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구속된 채,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밑바탕인 생명공동체를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위기의식은 ‘녹색평론’의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일단 김종철의 서문에서 고무적인 것은, 생명공동체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표출하였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정직하다는 점이다. 즉 지구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당위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출간한 ‘녹색평론’도, 숲을 훼손하는 행위인 벌채와 종이생산 및 사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비록 책을 만듦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한 그루의 나무라도 훼손하지 않아야 할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을 더하는 일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녹색평론’이 보여준 정직한 고백은 인간이 생명공동체에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가 아닐까. 

  현재 우리가 누리거나 일삼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사실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자동차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포기할 수는 없다. 물론 자가용 대신 자전거를 사용하겠다는 ‘양심적 자가용 거부자’들도 있으며, 그들의 노력은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공동으로 사용하는 자가용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현실적이고 정직하다. 인간이 만든 문제를 인간이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오만이 아닐까. 인간을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뒤따르는 한계를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향할 곳을 함께 꿈꾸며 함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모든 실천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이야기를 새겨본다. 

세상이 변하려면 자기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 같다. 우리의 고통은 자기자신이 바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정확히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일 것이다. 개인적인 노력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문제는 구조적이다-라고 흔히 지식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중략)…구조적 변화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는 것이며, 나 자신이 변화함으로써 벌써 세계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임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이 당면한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위기에 대한 진실로 인간다운 양심적인 응답일지도 모른다. (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