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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얼 쇼리스)] 인문학에서 희망을 찾다.

onmaroo 2011. 10. 21. 15:55

희망의인문학클레멘트코스기적을만들다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얼 쇼리스 (이매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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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는다. 인문학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소위 ‘공적 세계(public world)’, 즉 정치적 삶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기획된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책이다. 가난은 언제나 경제적인 문제로만 다뤄진다. 경제적인 무능력이나 불합리한 분배 구조가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언제나 경제적인 원조나 자립만을 해결책으로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접근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얼 쇼리스가 아닐까.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가운데, 가난이 지닌 근원적인 문제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간 삶의 어두운 면인 무력force의 속성인 차별성unfairness을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고상한 본등들 가운데 하나인 정당한 힘power이 지닌 포용성과 대비하는 방식으로 만성적인 가난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 중 ‘이 책을 쓴 이유’에서)

’지금 가난의 고통을 겪고 있거나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한결같이 가난에 대해서 말할 때 일자리나 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169쪽)

‘사람들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시인하고 인정할 때,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그들을 끄집어낼 정치적 대책이 전혀 없을 때 비로소 가난해지는 것이다.’(231쪽)

 

 가난은 개인의 무능력이나 불합리한 경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힘(power)을 갖게 하는 것이고, 이는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하며, 이러한 성찰적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의 어떤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쳐올 때 무조건 반응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해서 잘 대처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저는 인문학이 우리가 ‘정치적’이 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는 단지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보다는 좀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아테네의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정치’를 ‘가족에서 이웃, 더 나아가 지역과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219쪽)

 

  인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고상하게 해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물론 ‘고상한’ 삶이란 좀더 풍요로운(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뜻이 아닌) 삶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지적할 수 있으나, 고상해질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표식이나 장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얼 쇼리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문학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하는, 즉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지?’,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류의 질문. 살면서 한번쯤은 해 보았을 질문이다. 인문학은 아마도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과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성찰적 사고’)에 깊이와 폭을 더해주며, 답이 있든 없든 질문에서 답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생각의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