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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타이타닉 현실주의'

onmaroo 2011. 11. 15. 19:38
제1장 타이타닉 현실주의.
1장부터 읽는데, 윤독의 속도가 안 난다. 아직은 어색한 탓...
그래도 이 책 정말 곱씹는 재미가 있다. 

제1장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읽는다. 

 1999년 9월 22일자 영자신문 '저팬타임스'의 4페이지에 유엔환경계획의 '지구환경전망 2000'이란 보고서가 언급되었다.

 
850명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2년 반에 걸쳐 만들었다. ....
 선진공업국들의 자원 소비를 90% 감소시킬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90%를 줄여야 한다는 뜻)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큰 생명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다음 페이지인 5페이지의 경제면 기사.

 일본경제는 불경기로부터 조금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99년 8월의 기업체의 전력 소비량이 98년보다 2.6% 많아졌다. (13쪽) 


 만일 당신이 이 연이은 두 면의 기사를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생각해보라. 아무 생각없이 4페이지를 읽고 5페이지를 읽고 6페이지를 읽고... 그렇다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러미스가 하는 말에 잠시 귀기울여보자. 

 경제면 쪽이 '현실주의'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유엔보고서 쪽은 유토피아적인,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얘기로 되어버립니다. 무엇이 어찌되었건 하여간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게 '현실주의'인 것입니다. (14쪽)


그리고 러미스의 위트있지만 날이 선 이 한마디도 같이 읽어보자. 

 
재미있는 것은, 이 신문을 덮으면 그 2개의 기사는 키스를 하듯이 서로 꼭 겹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주의와 비현실주의라는 2개의 전혀 다른 세계로 되어버립니다. (14쪽)


 4페이지와 5페이지의 입맞춤 또는 '비현실주의'와 '현실주의'(어느 쪽을 '현실주의'라고 해야 할까?)의 키스. 무심코 신문을 넘기는 당신의 손에 의해 둘의 입맞춤이 이루어진데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 둘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이미 '현실주의'와 '비현실주의'로 나누어져있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걸 모르고 살거나 잘못 알고 살아간다. 

타이타닉 현실주의 

 러미스는 '현실주의'를 자청하는 경제발전론을 '타이타닉 호'에 빗대서 설명하는데, 매우 적확한 설명이다. 
 타이타닉 호는 배이기에 전진하도록 되어 있다. 누군가 '엔진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비상식'이자 '비현실주의적'이게 된다. 왜냐하면 타이타닉 호는 앞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어졌으니깐. 그래서 이 배의 선장은 '전속력으로!',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정작 이 배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타이타닉 호가 결국 무엇을 향해 갔는지를 알 것이다. 바로 '빙산'. 
 아마도 그 배에 탄 사람 중 누군가 '빙산에 부딪힙니다'라고 여러 번 말할지라도, 사람들은 '또 그 얘기?'라고 말하며 더 이상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한다. 왜냐하면,

 
마침내 빙산에 부딪힐 거라는 것은 알고 있더라도, 그 빙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인 얘기라고 이해하는 어렵습니다. 귀에는 들어와도 그것은 아직 볼 수는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은 타이타닉 호라는 배뿐입니다.(16쪽)

 이러한 타이타닉 호에 '전속력으로! 속력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라고 명령하면서, 오직 배만 볼 뿐 아직 보이지 않는 '빙산'은 보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러미스는 '타이타닉 현실주의'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보이지 않는 빙산이기에, 빙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러미스가 인용하고 있는 멜빌의 소설 <모비딕>, 거기에 나오는 '피쿼드'라는 배의 선장인 '에이하브'의 말은 '타이타닉 호'에도 들어맞는다. 

 선장 에이하브는 일찍이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흰 고래를 찾아 온 세계를 헤맵니다. 선장은 자신의 광기를 자각하고 있고, 일등항해사에게 그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모두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다. 목적만이 광적인 것이다"(18쪽)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시스템 속에서는 매우 '정상적', '논리적', '현실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에이하브처럼 '목적만이 광적'이라고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러미스는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말하면서, 1장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한다. 

 
이 세계 규모의 문화적, 환경적 재난은 이 세계정제 시스템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일어날 것이다, 라는 예측이 아니라 지금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재진행중의 '현실'인 것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만, 나는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21세기를 위한 '진정한 현실주의'가 이 책의 중심적 테마입니다. 
 현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 첫째로 현실을 보지 않으면 그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19~20쪽)

  꼭 기억하길 바란다. 러미스가 '현실주의' 자체를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현실적'이라 말하는 생각과 신념이 사실은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한 '비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타고 있는 21세기 '타이타닉 호'가 또 다시 '빙산'을 향하고 있지만, '빙산은 보이지 않으니....' '전속력으로 출발!'을 외치는 '비현실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맹목적인 신뢰가 우리를 어느 순간 천박한 '비현실주의자' 또는 '타이타닉 현실주의' 호의 선원이 되게 할 수 있으니. 

 이 책은 정말 읽을 만하다. 

-201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