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삶의 성실성과 돌층계

onmaroo 2023. 11. 27. 16:24

수필 <돌층계>(유경환)를 읽고 메모.
 

 우리는 인생을 너무 쉽게 살려고만 허둥거리며 살아 왔다. 차근히 한 층, 한 층 밟아야만 할 과정을 다 밟고 올라가는 성실한 사람을 오히려 어리석게 여기는 눈길로 바라보거나, 또는 약삭빠르게 잔재주로 앞지르려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눈길로 바라보았었다. 얼마나 높게 오르느냐 하는 것만을 고개 들어 쳐다보았기에 쉽게 오르려 했었다. 남보다는 조금 더 많이 오르려는 욕심 때문에, 남을 제치거나 딛고 올라서려 했었다. 
 끝이 있는 삶의 계단에 얼마나 높게,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 하는 것이 별로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이제야 힘이 드는 나이에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립 중앙 박물관의 높은 돌계단이 보이지 않는 손짓으로 내 삶의 성실성을 시험해 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야 내 삶의 계단을 얼마쯤 올라서서 지금 내가 선 곳이 어디쯤인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수없이 많은 층계를 밟아 오르면서 과정을 무시하지 않고 얼마나 차근히 제대로 발을 옮겼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다리에 힘주고 무릎을 짚어 가면서 이마의 땀을 씻게 되니, 한 층, 한 층 올라 딛고 서는 그 힘겨움에서 과연 얼마나 보람을 느꼈었는지 이제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나 비틀거렸는지, 얼마나 숨차게 헐떡이며 남을 밀쳤는지, 몇 번이나 헛디딜 뻔했는지, 또 뒤에서 남 보기에 흉하도록 갈 지자로 왔다 갔다 했었는지...... 그것을 헤아리는 동안 내 그림자가 길어진다. 
                                                                                                                                       -유경환 수필 <돌층계> 중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도 괜찮다. 
 성실함은 평범하면서도 훌륭한 성품이다. 
 그 성실함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하고 보람을 느끼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