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onmaroo 2021. 12. 12. 12:19

-고바야시 미키, 박재영 옮김, 북폴리오, 2017


 도서관 책꽂이에서 이 책을 본 것은 몇 해 전이다. 내 눈을 믿지 못해 꺼내들기는 했지만, 목차를 읽고 중간중간 몇 장을 읽으면서 결국 다시 꽂아넣었다. 생각보다 별로라기보다는 겁이 나서였다. 일본에서 출간된 터라 제목이나 표현에서 지나친 감이 있지만, 나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 꽤나 있어 보여서였다. 그러니깐 내가 이 책 속의 '남편'에 해당되는 건 아닐까 무서워서 그랬다. 그러면서 이런 책이 왜 도서관에, 그것도 어린이도서관 성인코너에 버젓이 꽂혀 있는 거야 라고 생각도 했다. 

 

 그러고 한참 뒤에 이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물론 그때도 끝까지는 못 읽었다. 중간정도까지 읽었었나. 나는 책을 온갖 곳에서 들고 다니며 읽는 편인데, 이 책은 도저히 꺼내들기가 어려웠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버스 안은 더 그랬다. 제목이 보일까 가방 안에서 책 뒷표지가 보이게 꺼낸다거나 그랬으니깐. 마치 이런 걸 읽고 있으면 내가 죽일 놈의 남편감이거나 죽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지 불안해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잠깐 생각했다. 내가 여성이자 아내였다면 어쩌면 대놓고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읽는 게 내가 뭐 큰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고, 또는 뭐 이럴 걸 이렇게까지 생각하냐며 괜히 내가 쪼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것도 같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결국 얼마전 도서관 서가에서 다시 내 눈에 띄어 빌려보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끝까지 읽었다. 버스 안에서, 화장실에서, 휴게실에서, 집 책상 위에서.... 물론 여전히 책 제목이 잘 보이지 않게.... 뭐, 그렇다고 내가 이 책에서 나오는 '죽어버렸으면 하는 남편'에 해당된다는 뜻은 아니다('이 정도는 아니지...'라며). 그냥.... 이 책에 나오는 남편들이 하는 행동들, 예를 들면 설거지나 빨래 등을 아내일인 것 처럼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한다거나,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그걸 치우며 가족들에게 잔소리와 불평을 쉽게 내뱉고 마치 내 할일 아닌 것처럼 굴었다거나.....등등. 쉽게 말해 책에서 언급하는 예시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가 이러고 있는 건가'라며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으니깐.  

 

 서두가 길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다. 아내들이 한심하고 답답한 남편들과 살아가면서 한번쯤 '으이구, 저 인간'이라고 말하는 걸 넘어서 남편에게 '살의'(이 책에서는 이 단어가 많이도 나오는데, 이래도 되나 싶다)에 해당하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와 각종 사례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기혼여성의 가사노동 문제, 경력단절 문제, 심리적 및 사회적 문제 등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르포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심도 있는 취재나 해설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조금은 극단적 사례나 표현에 대해 걸러서 봐야 할 필요가 있고, 이 책을 사회적 인용도서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다만 문제적 남편들이 일상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도 있는 유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남편'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고, 

중간에는 '나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사실은....'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끝으로 가면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라며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충족되지는 않는다.  

'아내'와 '남편'이란 존재를 뭘로 보자는 건가?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은 진심으로 잘 해야 하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왠지 진심보다 말부터 해야 당신이 산다는 뉘앙스도 느껴진다. '이기지 않는 3원칙'도 마치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구호같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남편의 삶'을 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기지 않는 3원칙'은 내 경험상 아내와 사이가 안 좋을 때 체념하듯 머리 속에 떠오른 것들과 비슷한데, 이는 되려 부부 사이를 정말 안 좋게 만드는 3원칙 같다. 물론 부부의 경우 상대와 말다툼이 있을 때 이기려고 드는 것 자체가 안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그저 이기려고 들지 말아야 하는 상대로 체념하는 것도 문제이지 않나. 승패가 달린 싸움이 아닌 이해와 해결을 위한 대화로 풀어가야 하는 게 맞다. 그런 대화법을 우린 잘 모르거나 배우지 못해서 문제인 거지... 

 

 '이러쿵저러쿵 둘러대지 말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동의한다. 나랑 같이 살면서 아내가 힘들어하고 울분에 차 있다면 내가 노력해야 하는 일은 일단 하려고 해야 하니깐. 내 경험상 그런 노력과 실천은 부부 사이를 좋게 만든다.  그리고 '최소한 점심 식사 정도는 직접 차려 먹어야 한다'는 말도 동의. 내 끼니를 나이 들어서까지 '요구'하는 남편은 되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남편'을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남편이 이 책 속의 '남편'인 것도 아니고 정도의 차이도 있는데, '남편들'은 모두 가정에서 반려동물보다 서열이 낮은 존재로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다뤄지는 느낌마저 든다. '나는 어떤가?'라는 자성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겠지만, 이 책은 그런 자성의 영향력보다 자극의 정도에 지나치게 치중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쩌면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기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등급을 매기는 것이 용인되는 일본의 분위기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끝으로, 이 책을 빌려 읽는다고 하니 아내가 자기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내 아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구? 

맞장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 때문에 아내가 뭔가 탄력을 받는 게 좋은 일일까 싶어서. 

부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 권하며 읽을 만한 책은 아니기에. 

남편들이 읽으면 모를까.  

그리고 나도 나름 자성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깐.

 

::참고로 이 책보다는 <82년생 김지영>이 진정 울림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진정한 울림과 성찰은 <82년생 김지영>이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