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마지막 거인'(프랑수아 플라스)

onmaroo 2021. 11. 19. 23:52

어린이도서관에서 빌린 책 <마지막 거인>(프랑수아 플라스, 윤정임 옮김, 디자인하우스, 2002)을 읽었다. 저자는 12~13세 청소년을 위해 이 책을 썼으나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꽤나 묵직한 주제와 말투로 쓰인 책이라 저학년 어린이보다는 고학년 어린이가 읽기에 적합하다. 그리고 나처럼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책이 남기는 생각과 감정의 여운을 좋아한다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싶다. 

우연하게 얻은 거인의 이(치아)가 계기가 되어 주인공은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나선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도달한 거인족의 나라에서 그는 거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한동안 아홉 명의 거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거인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은 자연의 모습 그 자체였으며 그들의 피부는 자연의 미세한 변화에 반응하는 색을 띠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동안의 시간을 보낸 그는 거인들과 이별하게 되고 다시 인간들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는 거인족을 찾아 나선 경험담과 거인족을 관찰한 내용을 책으로 써서 출간한다. 그로 인해 유명세를 얻은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다시 한번 거인족의 나라를 찾으려고 나선 그는 충격을 받는다.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 안탈라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깊이를 모를 심연의 슬픔, 그 밑바닥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했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74쪽)

 

사람들은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가 거인들을 살육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거인 안탈라의 머리를 전리품처럼 들고 돌아온 것이다. 결국 그의 책과 강연으로 세상에 알려져 거인들의 나라는 무참히도 파괴된 것이다. 

 

거인은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한다. 거인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거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듯이, 인간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자연 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소유하려 하며 파괴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목이 잘린 거인 안탈라의 애처로운 이 한마디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자신으로 인해 거인들이 살육된 광경을 본 그는 이런 고백을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영롱하게 빛나며 아롱거리는 그들의 화려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낚시에 걸려 들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산호 바다 속의 반짝이는 물고기 빛깔처럼 그 모습도 머지 않아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그네들의 비밀과 배반당한 우리의 우정도 함께 가지고 떠났습니다.
 거인들이 실재하고 있다는 달콤한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던 내 어리석은 이기심이 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 속 깊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써낸 책들은 포병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한 것입니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76쪽)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구나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도움이 되는 존재일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으면 될텐데 과연 그렇게 여겨질까?
어쩌면 자연에게 '인간'은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일 거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 그건 자연을 위하는 일이면서 인간의 가치를 진정으로 높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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