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나'를 사랑하는 '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를 읽고

onmaroo 2015. 7. 6. 15:19

리처드 테일러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를 읽었다.



1.
학교에 있다보면 아이들에게 자존감이 부족하단 걸 자주 느끼게 된다. 평상시 생활할 때는 그래 보이진 않을지라도, 상담을 하다보면 그게 드러나곤 한다.

외고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런 눈길이 싫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학교 아이들은 선망과 기대 사이의 줄타기를 하면서 입학을 한다. 누구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라고 걱정이 없겠으며 힘든 일이 없겠는가. 다만 학교 안에서건 학교 밖에서건 투정을 부리기엔 눈치가 보인다. 선망과 기대의 대상이 된다는 건 '불안'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자존감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1학년 담임으로 학기초 상담을 할 때면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된 모습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은 뒤쳐진 상태에서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열의를 갖겠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숨은 실력자의 겸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본 대부분은 열의나 겸손보다는 불안 그 자체였다.

그런 '불안'을 무겁게 깔고 있는 아이들은, 타인과의 비교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더 자유롭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첫발을 내딛는다. 물론 누구나 타인과의 비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다만 자신에 대한 신뢰와 애정인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는 그것이 오로지 '자기'와만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낮은 자존감과 깊은 불안의 숲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더욱 그렇다.



2.
이 책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책에 따르면 '자부심'이란 자기에 대한 정당한 사랑이라고 한다. '정당한'이란 말이 붙은 이유는, 자신에게 있는 개인적 탁월함이나 강점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탁월한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라는 말은 냉정하게는 들리지만, 그렇다고 내게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단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임무는 탁월하게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찾아 그 방면에서 두드러지는 것을 인생의 우선 목표로 삼는 것이다."(23쪽)
"자신의 가치를 드높일 무언가를 하라. 본디 그것이 당신 인생의 주된 과업이 되어야 한다."(67쪽)

내 안에 있는 탁월함, 강점을 찾아 그것을 키워나가는 일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얼핏 보면 어느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에 띠는 성과를 이룬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아니다. 위의 말들보다 나는 다음의 말이 '자부심'을 더 잘 설명하는 말인 것 같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열망하는 것"(65쪽)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않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일이 '자부심'에 이르는 길이다.

3.
문제는 내가 발견한 나의 탁월한 재능, 강점, 가능성 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리처드 테일러의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다. 탁월함과 자부심의 판단자는 오직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나'의 탁월함과 고귀함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이 엄격한 기준으로 탁월함을 판단하는 자가 되어야 할 뿐이다.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은 그 노력과 열정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행복한 사람이다. 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진정한 의미의 행복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할 뿐이다.

"그럼 자부심의 필수 조건을 생각해보자. 첫째,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즉, 그 사람은 단순히 겉보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개인적 탁월성에 대해 스스로 설정한 엄격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둘째, 자부심이 강한 사람은 남의 선망은 물론 존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쨰, 어떤 상황에서든 신중함의 규범을 따른다."(231쪽)

그렇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으로 자기허영이나 자만심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글쓴이가 말하는 '신중함의 규범'이다. 지나치게 겸손할 필요도 없으며, 겉으로 드러내려 애쓰려고도 하지 말 것이며, 무의미한 침묵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도 말라. 다만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는 신중함을 갖고 상대를 대하면 된다. 그것이 탁월함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며 고귀함을 잃지 않는 길이다.

4.


아이들이 누구나 탁월해지기만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무조건 배척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을 좀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자신이 좇아가고 있는 것들이 자기 안에서 나온 것들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기를 좀더 들여다보고 보듬어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기대와 평가만으로 살아갈 힘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삶을 살아가는 건 '나'이고 그런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것도 '나'다.
여전히 힘들고 지쳐있는 아이들이 자기 삶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이 학교에서 살아갔으면 한다.

# 이 책은...
이 책은 스스로 위축되거나 자신감이 부족한 자기가 싫어진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 단, 저자의 말투가 좀 거칠거나 모질다 느껴지면 책의 핵심에만 집중할 것. 그리고 선생님들과도 함께 읽어볼 만한 책.

2015년 7월, onmar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