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TV와 리모컨

onmaroo 2013. 11. 5. 00:06
야자감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다. 다들 피곤한 하루였을 거다. 진서는 유치원부터 놀이터까지 줄기차게 뛰어놀았을 거고 연우는 오늘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서 정신없었을 거고 아내는 늘 그렇듯 이 두 녀석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돌봐 기진맥진했을 거니 말이다. 나도 오늘따라 피곤에 지친다.
집에 들어와 씻고 책 하나 들어 거실에 앉아 있으니 정면으로 시커먼 TV 화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거나 보자 싶어 리모컨을 찾으니 없다. 평소 있을 만한 자리를 뒤지고 뒤지고 뒤져도 없다. 요즘 연우가 이것저것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두는 터라 연우가 그랬구나 싶지만 자고 있는 연우를 깨운들 말해줄리 없다. 사실 아직 말도 못하니. 됐다싶어 거실에 벌렁 누우니 괜한 오기가 생긴다. 보물 찾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살핀다. 마음을 비우면 가끔 눈에 들어오니 마음을 비운 척 마음을 먹어봐도 뵈질 않는다. 답답해 죽겠다. 딱히 보는 프로그램도 없는데 TV라는 괴물을 틀어는 놓고 싶어지고. 한데 리모컨이 없다. 이젠 TV를 보려는 건지 리모컨을 찾으려는 건지 분간도 안 간다.
바보 같다. 내가 뭔가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 방송을 보려는 게 아니라 리모컨 자체를 찾아야 하는 심정. 이유는 없다. 그냥 리모컨을 찾고 싶다. 또 이젠 리모컨을 찾은들 TV를 볼 마음도 없다. 그냥 TV를 안 켜면 이 조용한 시간과 공간이 낯설어 그거에 매인 느낌.
TV는 리모컨이라는 도구의 목적이다. 그리고 TV는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채워줄 기계이다. 나는 리모컨을 찾는 일로 그 시간을 대체하는 바보이다. 리모컨이 목적으로 삼는 TV는 지금 내 바보같은 행동의 이유조차 안 된다. 그저 리모컨만 찾는.
그러다가 문득 TV에도 버튼들이 있다는 생각에 리모컨 하나에 매달리는 일은 접어두고 TV앞에 다가간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볼륨도 줄이고 채널을 돌리고. 갑자기 보고 싶지 않다. 보고 싶은 방송도 딱히 없고 무엇보다 채널을 마구 돌릴 수 있는 리모컨의 편리함이 그립다. 성질이 난다. TV를 다시 끄고 리모컨을 다시 찾으려 주위를 둘러본다. 리모컨을 찾을까. 또 바보.
내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다. 결국 다 포기하고 이 글을 쓴다. 시덥잖은 이 글을 쓰려고 지금까지 이 짓을 했나 싶어 웃음도 난다.
'책이나 읽어야겠다.' '책이나'라니. 그것도 "폭력이란 무엇인가"(슬라보예 지젝)을 들고 나오다니. 주관적 폭력 중 '구조적 폭력'이란 게 있다. 물리적 폭력(객관적 폭력)은 직접적이고 가시적이며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 허지만 이 구조적 폭력은 그렇지가 않아서 정상적 상태에 내재해 있다. 그래서 이게 폭력인가 싶고 의도도 책임도 불분명하여 그저 어떤 과정의 결과로만 여겨진다. 또 그래서 정상 또는 일상 속에 그런 폭력이 유지된다.
젠장, 이 놈의 TV와 리모컨이 그 놈 같다. 지금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도 그렇고. 이젠 피곤하다. TV를 없애버려? 리모컨도 없애고? 그럼 아이폰도? 자동차도?
그럴 수 있을까?
2013.11.05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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