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정일 선생

onmaroo 2013. 4. 26. 14:30

1

마징가가 불렀나 독수리 오형제가 불렀나

내가 놓아둔 시집 한 권*을

커다란 정일 선생이 집어든다

한쪽에서 창밖 봄 풍경에 젖어 졸고 있는 나는,

찬찬히 들여다보다

정성스레 두 손으로 펼쳐든

시를 읽고 있는 그의 모습에

순간 잠에서 깬다

마음을 들썩이며 아름답게 반짝이던 봄날의 풍경보다

시집 안에서 걸어나오는 마징가와 만나고

독수리 오형제와 만나는 그가

더 눈부신 순간이다

우주쇼보다 진귀한 장면이더라

경이로운 순간이더라

정일 선생이라서가 아니라

시가 부르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붙잡은

그만이 가진

그 순간이

크고 아름답더라


* 정일 선생이 읽은 시집은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창비, 20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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