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자음과모음, 2013

onmaroo 2013. 11. 4. 20:28

요즘은 책을 읽으며, 발췌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일단 발췌해놓고 글을 쓸 준비를 한다. 그게 번거롭더라도 나중에 관련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당장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중에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발췌록/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자음과모음, 2013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부하에게, 또는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진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부하로서 희희낙락하며 영락해가는 것입니다. 멋지네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23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중략)전문가들은 한 가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매달립니다. 결국은 둘 다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환상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24

 

누군지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정보를, 즉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편합니다. 왜냐하면 그 명령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의 명령은 자기가 바꿀 수 있습니다. 어차피 자신이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확실한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지도 없이 이국의 숲을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중략)외부의 기준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요컨대 다른 사람이 보면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에 시달리게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27-28

 

들뢰즈는 철학이란 개념의 창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애초에 잉태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중략)개념, 임신, 그것은 세계를 다시 낳는 것입니다. 32-33

 

철학이란, 그리고 쓰는 것이란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 34

 

벌거벗은 형태의 읽기라는 게 대체 무엇이었을ᄁᆞ요? 그렇습니다. 그륀베델 자신의 무의식을, 그 욕망을 텍스트에 직접 접속하는 것이었습니다. 39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접속한다는 것입니다. 42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입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75

 

혁명은 폭력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폭력이 선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근거를 명시한 텍스트가 선행합니다.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 선행하는 것입니다. 110

 

텍스트의 변혁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입니다. 113

 

혁명은 문학(읽고 쓰는 행위나 기법 일반)으로부터만 일어나고, 문학을 잃어버린 순간 혁명은 죽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문학을 폄하하고 문학부를 대학에서 추방하려고 할까요? 왜 문학자 스스로가 문학을 이렇게까지 업신여길까요? 그것은 바로 문학이 혁명의 잠재력을 아직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그것에 겁을 먹고 있는 겁니다. 왜 우리가 이토록 정보의 틈새에서 괴로워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을 통치하는 텍스트라는 것이 무미건조한 정보이자 서류인 어느 시공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114

 

정말 목숨을 택할지, 읽는 것의 광기를 택할지 하는 일이 됩니다.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광기를 무릅쓰고 읽거나. 읽는 내가 옳은지, 읽는 나를 압살하려는 세계가 옳은지.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