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노트

종일 샘에게 배우다

onmaroo 2012. 3. 14. 00:55
지난 토요일, 조용하고 넓은 학교 공터에서 자전거와 퀵보드를 타려고 진서를 데리고 학교에 나왔다. 
제법 찬바람이 불어 오랫동안 타기는 어려웠다.
찬바람을 피해 교무실로 들어서니 이종일 샘이 계셨다.
점심으로 자장면도 얻어 먹고 종일 샘이 타주신 코코아도 나눠 마시고.
종일 샘은 진서에게 자기를 '1,2,3 아저씨'라 부르라고 했다. 수학샘이니...쩝 ^^
그리고 질문... 1+2는? 2+3은?
진서는 아직 셈을 잘 하지 못한다. 틀린 답을 툭툭 내뱉길래 난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어보라고 시켰는데,
종일샘은 틀린 답이든 맞는 답이든 잘했다고 칭찬하기만 했다.
틀린 답에 엉뚱하게 칭찬한다고 내가 핀잔을 주니,
종일샘이 말씀하시길....

"셈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아이에게 맞는 답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
뭐라도 스스로 생각해서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다섯 살 아이를 칭찬하기에 충분하다... "


뭔가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
난 다섯 살 아들에게, 
그것도 더하기조차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아이에게 정답을 말하기를,
손가락 하나하나 더하고 세어가며 정답을 말하기를
무모하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2+3=5가 나에게는 손가락까지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너무도 쉬운 것이지만, 
진서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는 
틀린 답을 말하고 있는 아들을 답답해하고 있었으니....이런 모자란 사람, 한참이 모자란 아빠라니...

미처 배우지 못했거나 더 배울 것이 남아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모를 수도 있고 틀린 답을 말할 수도 있다. 
5살 아이도 그러하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그러하고, 다른 사람도 그러하고...

아이들에게 스스로에게는 엄격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워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아들에게는 어느새 너그럽고 속깊은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진서야, 미안하다. 
그리고 종일샘, 감사합니다. 

201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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