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onmaroo 2013. 6. 21. 15:30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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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힘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 시작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온전히 자신의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하여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다른 무엇인가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자극을 받아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내가 아이폰을 사게 된 것도 다른 사람이 아이폰을 들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고, 아이패드 미니도 다른 사람들이 아이패드를 들고 있는 걸 보고 그것보다 더 좋은 걸 갖고 싶어서 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처럼 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만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정말 갖고 싶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보다 뒤처지기를 싫어합니다. 더 앞서거나 적어도 같은 위치에 서 있고 싶어 합니다.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내세우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걸 ‘질투’라는 힘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질투’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일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미뤄두었던 일을 시작할 수도 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나’는 이기고 앞서려고 노력하게 되며, 그 선의의 경쟁이 가치 있는 것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라면 앞서거나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은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투’가 지나치게 ‘나’를 사로잡게 되면, 자신은 자기 모습에 항상 불만족스럽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너’나 ‘그’처럼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속상한 거죠. 하지만 거기에는 정작 ‘나' 자신은 없는 거죠.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살아오면서 내가 바라는 것이 다른 사람처럼 살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기만 하다면 ‘질투’의 힘으로만 겨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질투’가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는 있지만 ‘나’를 사랑하는, ‘나’의 삶을 가꾸어가는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질투’는 ‘너’의 삶이지 ‘나’의 삶을 사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마치 간절히 바라는 것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보니 거기에는 ‘나’는 없고 제2의 ‘너’가 있는 것과 같은 거죠.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팽이는 줄을 감아주고 힘껏 그 줄을 풀어주어야 돕니다. 줄을 감고 풀어주는 힘은 ‘나’의 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고 있는 건 ‘나’라는 팽이입니다. 중심을 잡고 스스로 도는 힘을 가져야 팽이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가 팽이의 줄을 힘껏 풀어주었다고 하더라도 팽이는 팽이 스스로 도는 힘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한 번 가만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나’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이야기할 줄 아는지, 어떤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은 정말 ‘나’의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말을 어떤 뉘앙스로 말하고 있나요? ‘질투’만으로 삶을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투로 말할 건가요, 아니면 ‘질투’로 시작된 ‘나’라는 팽이가 중심을 잡고 힘차게 돌고 있다는 말투로 말할 건가요?

2013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