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생의 다른 생(백무산)

onmaroo 2013. 5. 13. 15:21

 생의 다른 생

-백무산

 

싸락눈 소복 담긴 낡은 새둥지 하나

키 낮은 싸리나무 기둥에

간신히 달린 집 한 채

봄날 근사한 집 짓고 예쁜 짝 만나

가족 이루고 재잘재잘 한철 산다

찬바람 속으로 떠나보냈네 뿔뿔이

둥지마저 버리고

긴 겨울 골짜기 나무처럼 울다

 

다시 봄날 처음 날 듯이 날갯짓하네

새집 짓고 새짝도 만나

첫봄 맞듯 처음 살 듯 다시 산다네

새들은 몇 번의 생을 살다 가는 것일까

 

내게도 벌써 여러 봄과

여러 겨울이 지났네

지난 계절들 내 손으로 다 거두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나의 낯선 생이 바람 속

빈 둥지처럼 나뒹굴고 있네

나는 지나온 나의 전부가 아니네

 

내 온몸이 통과해왔건만 낯선 생이

불쑥 낯익은 바람에 타인의 것인 양 흩어지고 있네

 

나는 그걸 하나의 생이라고 우겨왔네

저기 다른 생이 또 하나 밀려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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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예전보다 더 나아질 거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기대이거나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과거의 모습이 현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과거지향적인 삶에 머물지만 않는다면, 과거의 좋았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스스로에게 기대나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에 온전히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 사람도 역시 먼 과거와 지금의 현재는 분명 달랐을 겁니다.

결국 사람의 생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자기부정 속에서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그걸 ‘생의 다른 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의 생이라고 우겨’보아도 결국 우리는 ‘다른 생이 또 하나 밀려’오는 걸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지나온 나의 전부가 아니네

 

지난 시간과 삶이 후회스럽다고 하더라도, 또는 만족스럽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나’는 ‘생의 다른 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지나온 나의 전부가 아니네’라는 생각과 고백은 내 삶을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나온 삶은 어떠했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의 삶은 얼마나 많은 다른 생을 살아왔고 살아갈까? 모든 생각의 시작이 ‘나는 지나온 나의 전부가 아니네’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테지요.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2013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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