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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onmaroo 2013. 4. 30. 11:52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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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보릿고개를 보낸 세대도 아니며 가난을 경험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어머니의 뒷머리를 볼 때마다 예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결혼을 앞두고 양가의 부모님을 모시는 상견례 날짜가 잡혔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입고 나갈 옷 한 벌을 마련할 생각으로 나와 함께 백화점에 간 적이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어머니께서 옷을 사는 일은 내 평생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백화점이 그만큼 낯설고 어려운 곳이었지요. 중년 여성을 위한 매장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시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밖에서 눈으로만 옷을 보며 백화점을 돌아다니셨습니다. 나는 안에 들어가 직접 입어도 보시면서 마음에 드시는 옷을 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뭐, 별로 맘에 드는게......”라며 매장 안에 들어가는 것을 어려워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억지로 매장 하나를 골라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만지시는 어머니의 손길이 어찌나 멋쩍어 하던지... 매장 직원이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았지만 눈길을 이내 거두더군요. 무시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어 다른 쪽 입구에서 잘 차려입은 아가씨와 그 아가씨의 어머니가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매장 직원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들을 맞았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그러지 않고...... 아내가 예전에 백화점에 가야 할 때에는 잘 차려입고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화점 직원들은 한번 보면 옷을 살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더군요.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건가 싶어 화가 났습니다. 옷에 매달린 가격표를 슬쩍 보신 어머니는 매장 밖으로 조용히 나가시더군요. 그때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뒷머리를. 가지런하지도 않고 삐뚤거리게 잘려진 뒷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집에서 거울로 뒷머리를 비추며 이리저리 가위질을 하셨을 겁니다. 집 앞 미용실을 코앞에 두고 그 몇 천원을 아낀다고 말입니다. 그걸 본 나는 어머니께 화를 냈습니다. 우리도 옷을 사러 백화점에 왔는데 눈으로만 구경하시냐고, 사시든 안 사시든 들어가서 직접 입어보고 결정하셔도 된다고. 어머니께 화가 난 걸까요? 어머니의 뒷머리를 보고 어머니가 측은하게 여겨지는데도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우리 집이 지독하게 가난한 것도 아닌데, 궁상맞게 몇 천원 아껴 뭐하냐는 듯 그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젊은 시절 시집 오시고 남편인 아버지는 대부분의 세월을 해외 공사현장에서 일하셔서 살림이며 아이들 돌보는 일이며 혼자서 도맡아하셨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자식들에게는 아낌없이 베풀면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군요. 내가 왜 그런 분께 화를 냈을까. 난 누구에게 화가 난 걸까.

이 시를 읽으면 그때 어머니의 뒷머리가 늘 생각이 납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이 시를 가르칠 때에도 그 이야기를 꺼내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그런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을 텐데 그 순간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픈 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 어두운 복도에 홀로 서 있는 어느 엄마의 검은 실루엣도 그렇고, 공부하느라 힘들어 지친 채 잠든 어린 딸을 보기 위해 소리 없이 방문을 열어 본 어느 엄마의 손길도 그렇고.

지난 주 어린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 댁에 찾아가 뵐 때에도 물끄러미 어머니의 뒷머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는 삐뚤어진 뒷머리카락을 보아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말없이 한번 어머니를 안아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안아드릴 때인 것 같습니다.

 

2013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