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노트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조벽 교수)를 읽고

onmaroo 2013. 1. 28. 19:03

조벽,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를 읽고


 오랜만에 동료 선생님들과 책읽기 모임을 가졌다. 2013년 처음 읽게 된 책이자, 독서 모임의 첫 책은 조벽 교수님의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이다.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말하면, 교육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에 대한 철학과 인식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만 급급하던 것을 '왜 가르쳐야 하는가'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화두로 생각의 흐름을 되돌렸다고 하면 될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기에 자꾸 머리 속에서는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라는 질문과 조바심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흔히 교사들이 하기 쉬운 말인,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말로는 그런 말을 못합니까. 현실이 그걸 실현하기 어려운 거지.'라는 말을 나 역시 하고 싶어했으니깐. 하지만 조벽 교수님의 말대로 현실만을 탓하거나 무기력한 패배주의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되며, 그럴수록 교사 스스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를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서로 반성하면서 자신이 하는 말에 책임을 지려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교사들은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 낙담하기 쉽다. 교육의 목적과 의도를 상실한 채 입시라는 현실에만 매몰된 상황에서 '교실 붕괴'니 '학교 붕괴' 등이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희망'이란 이름은 몇몇 교사들의 힘겨운 노력이거나 원론적인 논의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희망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앞날이 훤하기 때문에 희망이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가질 때 앞날이 훤해옵니다. 희망이란 선물이 아닙니다. 희망은 뜻밖의 사고(事故)가 아니고 창의적인 사고(思考)입니다. (25쪽)


 희망을 가질 만한 조건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희망이란 51%라는 절반 이상의 확률을 보일 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둠 가득한 터널 끝에 보이는 아주 작은 빛을 따라 걸어가듯 단 1%의 가능성을 보려고 할 때, 또는 희망이란 이름을 선택해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조벽 교수님은 희망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로부터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교사들의 타성과 무기력, 패배의식 등을 비판하며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지식창출시대라는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의 질적 변화를 이야기한다. 


 새 시대의 학자란 학생이 지식을 발견하고, 응용하고, 종합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을까 연구하는 교육자를 뜻합니다. (62쪽)


 이는 교사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원론에 공감하고 각론에서 무너지는 느낌을 받더라도 옳은 말은 옳은말이다. (이쯤 읽다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이 책을 읽는 이유가 기술적으로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말이다.)


 -인재 양성에서 활성(유통)으로 교육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 

  실제 교육을 받는 '양성' 기간과 그 이후 사회인으로서 일을 하는 '활성' 기간으로 구분한다면, 우리의 교육 정책은 지나치게 '양성'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문제 의식. 

 (조벽 교수님의 오랜 외국 생활 때문인지 직역투의 어휘 선택이 좀 걸린다. 예를 들면 '활성'을 '유통'이란 말과 동일하게 사용하는데, 아직까지 인력을 유통한다는 말이 교육 담론에서는 문제가 될 만한 말일듯.)


-학력(學歷)에서 학력(學力)으로 

  학력(學歷)은 쉽게 말하면 '졸업장'을 말한다. 하지만  학력(學力)은 배움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알고 있다'에서 '할 수 있다'로

 단순히 지식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지식창출시대의 인재라고 말하기 어렵다. 즉 '알 수 있다'가 '할 수 있다'로 바뀌도록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인간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역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수업을 그리기보다는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끔 할 것인가'를 부단히 고민하는 것으로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조벽 교수님은 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알라!' 즉, 교사 자신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중요한 존재이고 영향력 있는 존재인지를. 따라서 교사가 자신의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때 교사는 바뀔 수 있다. 또한 그런 만큼 반면교사(反面敎師)는 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교사는 학습사회에서 가르치는 사람(teacher)이 아니라 동료 학습자(co-student)라는 점을 알고 자신 또한 성장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 (124쪽)


 교육학 개론서에 흔히 나오는 인용문구라는데, 나는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처음 보는 문구치고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듯 싶다. 


그리고 능엄경에 나오는 손가락과 달 이야기도 되새겨본다. 교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자체가 될 수 없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인데, 아이들이 내가 가리키는 달을 볼 줄 알아야지 내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조벽 교수님은 이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의식해야 한다는 말은 타인에게 비친 사람으로서의 자신이 아니고, 강의 내용을 전달하는 도구로서 청중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의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는 강의를 하는 동안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은 잊어야 합니다. 자신은 그냥 칠판과 같이 강의에 필요한 도구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중략)--- 자신을 완전히 잊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도구로서의 자신을 모두 바치는 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존경과 따름을 받으실 것입니다. (150쪽)


 무슨 말씀이신지는 충분히 알겠지만, 솔직하게 적절한 표현은 아닌 듯 싶다. 그냥 다음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 하나만으로도 조벽 교수님의 의중은 충분히 전달될 듯 싶은데...


 결국 달을 가리키는 자신의 손가락을 잊음으로써 학생들이 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정한 명강의가 아닐까 합니다. (같은 쪽)

  

 나를 되돌아본다.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 뭔가 잘 가르치는 듯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교탁 앞에 서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의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은 교사인 내가 아니라 앎과 앎의 즐거움이 아닐까. 그리고 나서 교사로서 내가 기억되는 것일 테고. 반성의 일침을 가하는 부분이었다. 


 이쯤해서 나는 어떤 교사인가 되묻게 된다. 내가 가진 교육의 키워드는 무엇이고, 나는 교사로서 무엇을 고민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어보게 된다. 

 결국 내가 교사로서 고민하게 될 문제를 월리엄 에어스의 <가르친다는 것>(양철북)에서 다시 찾게 되었다. 선생님들과 돌려보기도 했고. 


 모든 교육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나, 두 가지 질문을 다룬다. '어떤 지식과 경험이 가장 가치가 있나?', '이런 가치 있는 경험과 지식을 학생들이 최대한 활용하도록 만들 힘과 활기와 능력을 불어넣기 위한 수단은 어떤 것인가?'(앞의 책, 59~60쪽)

  

  교육활동에서 교사의 존재 의미는 학생의 존재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도록 도울 것인지를 고민하고, 교육활동이 가치 있는 무엇을 함께 나누는 것이 되고 있는지를 늘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교사는 '도덕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 거다. 

 현재 내가 찾은 교육의 키워드는 '성장', '소통(관계)', '즐거움'이다. 이 세 가지는 현재 내가 부정할 수 없는 교육의 중요한 가치이자 키워드이다. 언제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만을 지엽적으로 고민하던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왜 가르치는가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2013년의 시작은 행복하다. 갈 길이 멀지만 그 길이 후회없는 길이 될 것을 스스로 믿어본다. 그리고 이번 동료 교사들과의 독서 모임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3년 1월 28일, 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