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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onmaroo 2016. 10. 4. 01:25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정문주 역, 더숲, 2014)



:: 두 번을 읽은 책이다. 첫 번째는 빵집 이야기로 쉽고도 빠르게 읽었고, 두 번째는 부패하는 경제를 위한 빵집 철학으로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읽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쉽지 않은 길이란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생산수단을 공유하기보다는 각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말은 멋지다. 하지만 학교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나'는 어떤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학교에서 이를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내 삶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요즘에 드는 생각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과 내 삶을 연결짓는 일이라는 생각. 책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을 들여다보고 책대로든 책과 반대든 좋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 그게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다. 
 어쨌든 이 책이 맘에 들기는 하다. 생활이라는 구체성을 띠지 않은 책은 너무 어렵거나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기 일쑤다. 그리고 너무 생활 밀착형의 책은 마지막 장을 읽을 때쯤 알맹이 없는 허탈감에 책값이 얼마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고 친근한 빵집 이야기 속에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관련한 저자의 철학을 잘 담아낸 책이다. 이런 책은 읽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조만간 세 번째 독서를 할 거만 같다. 

:: '부패하는 경제'란 용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그 사용 의도는 곱씹을 만하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발효도 부패에 포함되며, 이 두 가지 모두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의 분해현상이지만, 인간에게 유용한 경우에는 발효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패라고 부른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균의 작용을 통해 자연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일정 기간 썩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인 것이다. ...... 시간에 의한 변화의 섭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은 하나 더 있다. 돈이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79-80)

 비효율적일지언정 더 많은 정성으로 한 번이라도 더 많은 손길을 거쳐서 공 들인 빵을 만들고, 이윤과 결별하기, 그것이 부패하지 않는 돈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84)

자연의 균형 속에서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일 없이도, 누군가가 혹사당하지 않고도 생물이 각자의 생을 다한다.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 각자의 생을 다하기 위한 배경에 부패라는 개념이 잇다고 한다면 부패하는 경제는 우리 각자의 삶을 온화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빛나게 해주지 않을까?(85)

"'자란다'는 게 포인트야. 비료를 줘서 키우는 게 아니고 자라게 하기 위한 땅을 만드는 거지.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 그게 자연재배의 핵심적인 일이야."(132)

자기 안에 있는 힘으로 자라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작물은 발효하게 된다. 생명력이 강한 것들은 균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유지하여 생명을 키우는 힘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식품으로서도 적합하다. 반대로 외부에서 비료를 받아 억지로 살이 오른, 생명력이 부족한 것들은 부패로 방향을 잡는다. 생명력이 약한 것들은 균의 분해 과정에서 생명력을 잃는다.(137)

어떤 의미에서 부패는 생명에게 불필요한 것들 또는 불순한 것들을 정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37)

균을 중심에 둔 이 방식을 우리는 '금 본위제'가 아닌 '균 본위제'라 부른다. 자연의 소리를 듣는 자연 중심의 빵. 균의 마음 그대로 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143)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임금을 현금으로 받으면 공장주에 의한 노동자 착취는 끝난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에게는 또 다른 부르주아계급이 달려든다. 다름 아닌 집주인, 소매상인, 전당포 등이다."(<공산당 선언>) (171)

빵집의 좋은 점은 생산자 및 고객과 모두 소통할 수 있고, 생산자와 고객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176)

우리는 빵을 매개로 지역 내 농산물을 순환시킨다. '지역생산 지역소비'를 실천함으로써 지역의 먹거리와 환경과 경제를 한꺼번에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176)

 경제활동이 낳은 부는 자원으로서의 인간이 가진 기능과 자연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177)

:: 작은 서점, 인디서점의 등장도 이런 맥락에서 아닐까. 그리고 개인 소상공인으로 자기 이름을 내걸거나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것도 크게 보아 다르지 않을 듯 싶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는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법이 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본다.(185)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면 노동력이 값싸지고 노동력이 값싸지면 상품 가격도 떨어진다.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상품과 노동력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숙명이었다.  ...... 우리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빚어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 그러려면 정반대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상품과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195-196)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 즉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올바르게 쓰고, 상품을 정당하게 '비싼' 가격에 팔 것이다. 착취 없는 경영이야말로 돈이 새끼를 치지 않는 부패하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 (196) 

균은 손이 많이 가는 자식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사랑해주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다.(204)

:: 나도 학교에 있고, 내 아이들도 키우고 있다보니 내가 하는 일과 나의 신념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자라서 빵을 굽게 될지, 이 가게를 이어줄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이들과 스태프가 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바를 살려서 믿음직스럽게 자랐으면 좋겠다. 일의 의미를 몸으로 배워서 자신의 장래를 위해 썼으면 한다. 그것이 시골빵집의 또 하나의 도전이다.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주제넘은 소리다. 다만 우리는 사람이 자랄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려 한다.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