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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리모컨

야자감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다. 다들 피곤한 하루였을 거다. 진서는 유치원부터 놀이터까지 줄기차게 뛰어놀았을 거고 연우는 오늘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서 정신없었을 거고 아내는 늘 그렇듯 이 두 녀석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돌봐 기진맥진했을 거니 말이다. 나도 오늘따라 피곤에 지친다. 집에 들어와 씻고 책 하나 들어 거실에 앉아 있으니 정면으로 시커먼 TV 화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거나 보자 싶어 리모컨을 찾으니 없다. 평소 있을 만한 자리를 뒤지고 뒤지고 뒤져도 없다. 요즘 연우가 이것저것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두는 터라 연우가 그랬구나 싶지만 자고 있는 연우를 깨운들 말해줄리 없다. 사실 아직 말도 못하니. 됐다싶어 거실에 벌렁 누우니 괜한 오기가 생긴다..

단상노트 2013.11.05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13

, 다니엘 페나크,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13 더러 우리 멋대로 말을 만들고, 고유 명사를 뒤바꾸고, 줄거리를 뒤섞고, 이 이야기의 서두에 저 이야기의 결말을 갖다 붙였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아니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본 적도 한 번 없이 그저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했을지라도, 우리는 아이에게만은 소설가였고 유일한 이야기꾼이었다. 20 한마디로 아이는 진정한 독자였다. 20 무상의 베풂. 아이는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다. 선물로 말이다. 일상의 시간을 벗어나는 한순간. 모든 것을 접어둔 채…… 밤마다 듣는 이야기는 아이에게서 하루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닻줄이 하나하나 풀리면, 아이는 바람을 따라 항해를 했다. 한없이 가벼운…… 그 바람은 바로 우리들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41 그..

메모노트 2013.11.04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자음과모음, 2013

요즘은 책을 읽으며, 발췌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일단 발췌해놓고 글을 쓸 준비를 한다. 그게 번거롭더라도 나중에 관련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당장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중에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발췌록/ , 사사키 아타루, 송태욱 역, 자음과모음, 2013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부하에게, 또는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진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부하로서 희희낙락하며 영락해가는 것입니다. 멋지네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23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메모노트 2013.11.04

'자발적 복종'과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같이 읽기

,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박설호 역, 울력, 2009 , 인디고 연구소, 궁리, 2013 정말로 기이하지 않은가? 라 보에티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놀라운 것은 인민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이다. 실제로 인민들은 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기이하지 않는가? 15 흔히 폭정이나 불합리한 권력에 대해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한 분노는 당연하듯 그 일을 하는 독재자나 권력자를 향한 분노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문제의 본질인가? 진정한 사유란 무엇입니까? 사유라는 것의 일차적인 단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 문제 상황인가”, “이것이 문제를 드러내는 올바른 방법인가..

메모노트 2013.11.01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을 화두로 책을 읽고 있다. 팟캐스트 BUNKER 1 특강 중 강신주의 '일'을 듣다 언급된 책이어서 읽게 되었고. 먼저 첫 번째 책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역, 사회평론, 1997). '게으름' 자체를 예찬한다기보다는 '노동'(이 책에서는 '근로'라고 번역했는데 별로...)의 미덕을 비판하고 '여가'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그러니깐 버트런드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은 곧 노동의 미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루 4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면서 얻게 되는 '여가'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노동'을 미덕으로 삼고 '게으름'을 비난하는 태도를 뒤집는 게 이 책의 내용인듯 싶다. 이 책은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글이다. 23페이..

메모노트 2013.09.23